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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주는 메시지 [김영태 칼럼]
“행운이라는 네잎클로버를 얻기 위해, 행복이라는 세잎클로버를 짓밟는다.”
‘행운’과 ‘행복’을 클로버로 비유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보이는 세잎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하고, 애써 찾아야 발견할 수 있는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한다. 나폴레옹이 산책하던 중,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는 신기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는데 그때 총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총알에 맞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네잎클로버가 행운에 상징이 되었다. 다 아는 얘기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네잎클로버가 아니라, ‘짓밟는다.’이다.
행운의 상징인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꼈던 적이 있었다. 발견하면 조심스레 따서, 지갑이나 다이어리 등에 잘 간직했다. 코팅해서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다 코팅된 네잎클로버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네잎클로버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밟혀서 뭉개진, 세잎클로버도 떠올랐다. 위 문장을 접하고 나서부터 그랬다. 여러 명이 찾겠다고 풀밭을 헤집고 나오면, 바닥에는 풀들이 여기저기 눕혀졌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만 바라보면, 그렇게 된다.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다른 것은 무시되거나 짓밟히게 된다. 하소연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 그렇다. 누군가가 자기 생각으로만 밀어붙이면,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겨난다. 때로는 그 부작용이 생계와 직접 닿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시사 프로그램 등에서 그 문제를 다루는 이유도, 보지 못해서 짓밟히는 사람들을 좀 살펴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알고도 그러거나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지만 말이다.
풀을 언급하니, 한 가지 이야기가 더 떠오른다.
잡초는 원래 있던 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이 필요 없고 성가신 풀이라 단정 지어서, 쓸데없는 풀이 됐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은 사람들보다 더 먼저 이 세상에 왔고 그렇게 생명을 이어갔다. 풀에 처지에서는, 굴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이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다 나쁘고 그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나한테는 매우 필요한 물건이라는 건, 경험을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다. 잘 잊어서 그렇지. 열쇠를 이용하던 시절, 타인에게는 쓸데없는 쇠붙이지만, 나에게는 집에 들어갈 유일한 도구가 된다. 같은 도구지만, 쓰임과 중요도가 다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권유할 수는 있어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