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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12)] NBA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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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4년08월20일 05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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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월 17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NBA 센트럴 디비전 농구 경기에서 시카고 불스의 슈팅 가드이자 스몰 포워드인 마이클 조던(등번호 23번)이 자유투를 준비하고 있다. 이 경기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113 대 112로 승리했다. (사진: Jonathan Daniel/Allsport/Getty Images)

 

1991년 NBA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춘 마이클 조던은 시즌이 끝나고 ‘잠수를 탔다.’ 그는 시카고 불스 동료가 아닌 다른 절친들과 골프여행 및 도박을 하면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그는 코트 밖에서 팀 동료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불스에서 그는 외로운 존재였다. 그는 특히 호러스 그랜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랜트는 불스 선수 중 유일하게 조던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선수였다. 그는 구단과 코칭스태프에 조던에 대해 이중잣대를 사용하는 게 불만이라는 표현을 자주 했다. 사적인 지적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해서도 그랜트는 자신의 생각을 숨김없이 말했다. 그랜트의 조던 비난은 ‘농구 황제’가 백악관 방문을 포기했을 때 더욱 날카로웠다. 

 

미국 프로스포츠 챔피언팀은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하게 되는데 조던은 이 행사에 불참했다. 당시 대통령은 조지 H.W. 부시(소위 아버지 부시)였다. 그랜트는 “우리는 힘을 모아 챔피언이 됐다. 한 사람이 이렇게 따로 놀면 두 번째 챔피언 트로피는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조던을 비난했다. 시카고 지역 언론도 조던의 백악관 패싱에 비판적이었다. 시카고 선-타임스는 불스가 조던에게 벌금을 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던은 이에 대해 “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갖길 원했다. 구단과 대통령을 무시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조던은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골프여행 중에 있었던 것으로 추후 밝혀졌다. 조던의 수난은 계속 이어졌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할 원조 드림팀 멤버가 발표됐을 때 조던은 아이제이아 토머스를 선발하면 자신은 뛰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결론적으로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올림픽 출전 선수를 막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들끓었다. 조던은 토머스가 이끌었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화가 나 있었다.

 

1991년 동부 컨퍼런스 결승 최종전에서 불스의 승리가 거의 확정되자 토머스와 그의 동료는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불스 벤치를 가로질러 코트를 떠났다. 이에 대해 비난이 빗발쳤다. 불스 선수들은 황당해했고 조던은 특별히 그들의 이상 행동에 분노했다. 조던은 설상가상으로 ‘The Jordan Rules’라는 책의 발간으로 이미지에 치명타를 맞았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불스 전담 칼럼니스트인 샘 스미스가 쓴 이 책은 조던의 부정적인 부분도 다뤘다. 이 책이 나오자 농구 팬들의 관심은 조던의 부정적인 면에 집중됐다. 이뿐 아니었다. 조던은 데이비드 스턴 NBA 커미셔너로부터 도박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조던은 여름휴가를 혼란 속에서 보냈고 농구공을 거의 잡지 않았다. 몸은 농구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고 팀 닥터는 “조던이 운동을 하지 않아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작은 수술도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던은 팀 닥터의 말을 무시했다.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몸은 그렇다 하더라도 조던은 농구를 즐기지 못했다. 농구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전 시즌과는 달리 그는 느슨한 마음가짐으로 1991년 11월 새 시즌을 맞았다. 불스는 1991-92시즌을 앞두고 핵심 선수들과 재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991년 NBA 챔피언 결정전의 영웅이었던 존 팩슨은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데리고 가려고 호시탐탐 노렸다. 

 

1990-1991시즌 당시의 존 팩슨. 그는 1991년 NBA 챔피언 결정전의 영웅이었다.

 

불스는 처음에는 1년 계약을 팩슨에게 제안했는데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4년 520만 달러에 전격 재계약을 체결했다. 빌 카트라이트와의 계약도 처음에는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3년 66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필 잭슨이 원했던 딜이 성사되고 불스는 지난 시즌과 비슷한 전력으로 새 시즌을 맞았다. 시범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한 가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조던이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경기에 나선 것이다. ‘혀 날름’이 전매특허였던 조던은 “나쁜 습관”이라며 마우스피스를 물고 출전했던 것이다. 그는 그러나 몇 경기를 해본 후에 마우스피스를 버렸다. 불편했던 것이다.

 

1991년 11월 초에 정규 시즌이 시작했다. 조던은 1992년 1월까지 농구를 즐기지 못했다. 왠지 무기력해보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럼에도 조던은 꾸준히 고득점 행진을 했다. 불스 선수들도 지난 시즌의 승기를 계속 이어가 승리하는 불스 구단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불스가 연전연승하자 언론은 시즌 70승팀이 될 것을 예상했다. 82경기 가운데 70승을 거두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 불스는 상승세였다. 팀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승기를 꺾을 팀이 없었다.

 

불스는 1991-92시즌을 67승15패로 마쳤다. 구단 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다. 불가능한 승수로 보였던 70승에 3패가 모자랐다. 1992년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마이애미 히트였다. 결과는 불스의 3전 전승.

 

1980년대 LA 레이커스의 쇼타임을 이끌었던 팻 라일리. 1990년대에는 뉴욕 닉스로 옮겨 그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시카고 불스에 걸려 넘어졌다. 닉스에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2라운드 상대는 부담스러운 뉴욕 닉스였다. 닉스는 전 레이커스 쇼타임 시절 감독인 팻 라일리를 영입해 야심 찬 행보를 하고 있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닉스는 강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3승2패로 승리하고 2라운드에 진출한 강팀이었다. 닉스는 그 어느 때보다 거친 팀이 돼 있었다.

 

닉스는 불스의 2년 연속 우승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필 잭슨 감독은 생각했다. 잭슨 감독은 라일리의 지도방식에 매료돼 있던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존경하는 감독이었다. 닉스가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하자 잭슨 감독은 “역시 라일리다!”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닉스는 예상대로 강팀이었다. 1차전에서 불스는 닉스에 89-94로 패했다. 2년 연속 우승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제 닉스는 불스의 유일한 적수가 됐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보스턴 셀틱스는 이미 ‘지는 태양’이었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을 때와는 달리 약한 팀으로 전락했다.

항상 불스의 발목을 잡았던 두 팀이 파워싸움에서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떠오르는 팀이 팻 라일리의 닉스였다. 닉스는 정규 시즌에 51승31패를 기록해 애틀랜틱 디비전에서 공동 1위에 올랐다. 이전 시즌에 5할 승률도 못 되는 팀이 감독이 바뀌면서 새로운 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시 닉스의 주전 선수는 패트릭 유잉, 제이비어 맥데니얼, 제럴드 윌킨스, 마크 잭슨, 찰스 오클리였다. 식스맨으로 존 스탁스가 활약했다. 스탁스는 이후 조던의 전담맨이 돼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이렇게 새로운 적수와의 시리즈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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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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