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2월 7일: 시카고 화이트삭스 외야수 마이클 조던이 화이트삭스 기자 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마이클 조던은 1994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 맹연습을 했다. 연습할 때 그가 잡은 공은 농구공이 아닌 야구공과 야구배트였다.
그는 매일 200-800회 스윙 연습을 했다. 1994년 2월15일 31세 생일이 되기 이틀 전 그는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에 모습을 나타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봄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는 이례적으로 언론 기자 250명이 몰려들었다.
프랑스, 잉글랜드, 일본 등지에서 파견된 기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이클이 타격 연습, 주루 연습, 수비 연습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기사를 작성했다. 마이클은 주루에서는 빼어남을 보여줬다. 1루까지 3.8초에 달렸던 것. 화이트삭스 선수 중 가장 빨랐다.
하지만 마이클의 스윙은 문제가 있었다. 배트 스피드와 파워가 부족했다. 그는 “지름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는 모습만을 봐주면 좋겠다”고 부정적인 의견에 대해 응답했다.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했다. 그에게 쏠린 엄청난 관심에 스프링캠프장은 팬들로 가득했다.
2월23일 그는 마침내 실전에 투입됐다. 투수 호세 델레온의 80마일짜리 공을 때려낸 조던은 “적어도 공을 맞힐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에 가진 팀내 청백전에서 그는 삼진아웃 2개와 중대한 수비 실수를 기록했다.
일부 언론은 “마이클이 코트에서는 ‘에어 조던’이지만 야구 필드에서는 ‘에러 조던’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첫 15타석에서 단 1안타만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스프링캠프에서 그는 갈 곳이 배정됐다. 그의 소속팀은 더블A의 버밍햄 배론스였다. 앨라배마주에 있는 마이너리그 팀이었다. 마이클의 마이너리그 데뷔 경기에 무려 1만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첫 경기에서 삼진아웃 2개, 플라이 아웃 1개를 기록했다. 그는 이어진 다음 경기에서 에러를 기록했고 안타는 제대로 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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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러조던은 짐을 싸야겠다”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조던은 이를 악물고 견뎠고 실력 향상을 위해 애를 썼다. 노력의 결과가 있었다. 그는 4월에 11경기 연속 안타를 때려냈다. 하지만 이후 다시 부진해 전반기를 1할9푼4리의 타율로 마쳤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는 조던이 야구에서 부진하자 '짐 싸!'라는 제목으로 그의 야구 도전을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이에 조던은 "공정한 판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야구가 시즌 중반을 지날 무렵 NBA는 1993-94시즌 막바지를 향해 달렸다. 조던이 없는 불스는 스카티 피펜을 중심으로 뜻밖에 선전해 시즌을 55승27패로 마쳤다. 호성적이었다. 불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에 3전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다음 상대는 당시 라이벌 관계가 된 뉴욕 닉스였다. 불스는 선전했다.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이었다. 조던이 없는 불스는 7차전에서 닉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3승4패로 아깝게 무릎을 꿇었던 것.
불스는 2라운드에서 탈락했고 4년 연속 우승에의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그렇게 불스의 시즌이 끝날 때 조던은 야구 그라운드에서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렸다. 그는 7월에 생애 첫 홈런을 때려냈다. 안타치러 나갔다가 홈런을 치고 홈플레이트를 밟은 조던의 354타석만의 ‘롱볼’이었다.
마이클은 시즌을 2할2리, 홈런 3개, 51타점으로 마쳤다. 114삼진아웃 그리고 11에러를 기록했다. 시즌이 끝나고 그는 유망주들이 모인다는 애리조나 가을리그에 참가했다.
시카고, 일리노이주 코미스키 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연습 중, 시카고 화이트삭스 외야수 마이클 조던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필수: Jonathan Daniel/Allsport US.
이곳에서는 훨씬 나은 모습의 조던이었다. 그는 2할5푼2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마이클은 9월에 열렸던 스카티 피펜 주최 자선경기에 초대됐다. 여기서 그는 화려한 농구 기술을 선보이며 농구 선수로서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두 달 후인 11월 불스는 시카고 스타디움을 허물고 유나이티드 센터라는 새 구장을 건설했다. 유나이티드 센터 개장 행사에 참가한 조던은 자신의 동상이 경기장 앞에 세워진 것을 봤다. 그리고 그의 23번 유니폼은 영구결번이 됐다. 감동의 개장 행사였지만 그는 여전히 농구 코트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그는 다음 시즌에도 계속 야구를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야구 시즌이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선수들의 파업으로 메이저리그 시즌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던 것. 1995년 3월2일 그는 화이트삭스 스프링캠프장을 떠났다. 그리고 야구 필드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조던이 야구를 떠나자 소문이 나돌았다. 그의 복귀 소문은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했다. 소문은 현실이 됐다. 조던은 1995년 3월18일 복귀를 선언했다. 그가 언론사에 보낸 성명서에는 짧은 한 줄이 쓰여 있었다.
“나는 복귀한다. (I AM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