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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3)] 조던, 평범에서 전설로: 학창 시절의 숨겨진 이야기

평범한 학생에서 농구의 신으로: 조던의 초기 여정

등록일 2023년11월14일 21시1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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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올스타인 맥도날드 올아메리칸으로 뽑혔던 마이클 조던의 고교시절 모습

 

(3) 조던, 평범에서 전설로: 학창 시절의 숨겨진 이야기

 

한국 어른들은 자녀에게 ‘기술을 배워라’라는 말을 자주한다. 기술이 있으면 어디 가서든 밥은 굶지 않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도 고교시절에는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의 친지는 조던이 고교를 졸업할 즈음에 “육군사관학교를 가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오면 군인이 되어 기본 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던의 농구 실력이라면 육군사관학교에 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조던의 농구 인생에 대해 밝은 전망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조던은 고등학생이 된 후 초반에는 학교 농구팀에 뽑히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연습벌레이긴 했지만 키와 몸무게가 소속팀의 승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기간에 갑자기 키가 크기 시작한 조던은 졸업반이 됐을 때에는 여러 대학이 영입을 원하는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 그래도 고교 시절 내내 그는 ‘미래의 스타’로 대접 받는 상황은 아니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시에 있는 래이니 고교에 다녔던 조던은 친구들로부터 자주 놀림을 받았다. 머리카락이 짧아서 친구들은 그를 ‘대머리’라고 놀려댔다. 조던은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내 머리를 만지면서 놀려대 화가 많이 나곤 했다”라고 회상했다. 

10학년(고1) 때 조던의 키는 5피트11인치(약 180cm)였다. 이 키로는 미국에서 농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비록 170cm가 약간 넘었던 9학년 때 덩크를 할 정도로 점프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키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학교 선발팀에서 제외됐을 때 그는 조용히 혼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농구를 중단하지 않았다. 열심히 농구 연습을 했던 그는 10학년과 11학년 사이에 4.5인치(11.5cm)나 자랐다. 190cm가 넘는 가드가 돼 있었다. 조던은 11학년이 되어서야 학교 정식 농구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농구팀에 들어가자마자 거의 모든 학교 기록을 갈아치우기 시작했다. 정식 팀에서 농구를 한지 오래되어 때로는 인바운드 패스를 해야 할 상황에서 드리블로 치고 나가 모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고교 선수 중 최고의 영예인 맥도날드 올-아메리칸으로 선발되면서 대학 농구팀들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졸업반인 12학년이 되기 한 해 전에 정식 선수가 됐던 그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조던은 어린시절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를를 응원했지만 그가 선택한 대학은 노스캐롤라이나大였다. 조던이 노스캐롤라이나를 선택한 이유는 선수를 선수로 보지 않고 학생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大는 제임스 워디, 샘 퍼킨스 등 미래의 NBA 스타들로 가득한 팀이었다. 조던이 고교 시절 마지막 2년 동안 맹활약했지만 이 농구 명문 대학에서는 적어도 첫 2년은 벤치를 따뜻하게 만들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조던은 그러나 신입생 시절이었던 1981-82시즌에 주전 자리를 꿰찼고 소속팀이 NCAA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조던의 노스캐롤라이나대는 결승에서 패트릭 유잉이 활약했던 막강 전력의 조지타운大를 만났다.

결승전 종료 휘슬이 울리기 15초 전에 노스캐롤라이나는 1점차로 뒤져 있었다. 조던은 마지막 슛을 던졌고 이것이 림 안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노스캐롤라이나는 63-62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다음은 1982년 3월30일자 샬롯 뉴스의 기사로 조던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승전이 열리는 뉴올리언스의 경기장으로 오면서 ‘마지막 슛을 쏠 기회가 나에게 온다면’이란 상상을 했고 나는 나름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실제 결승전에서 나에게 기회가 왔고 나는 슛을 쐈다. 그리고 공이 들어가는지 보지 않았고 곧바로 수비할 태세를 갖췄다." 공은 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관중과 동료들이 환호하는 걸 보고 마지막 슛이 성공임을 알았다고 했다.

딘 스미스 감독이 1982년 당시 21년 동안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조던은 첫 번째 신입생 주전 선수로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날의 경기는 슈퍼 신입생의 대결로도 관심을 끌었는데 7피트의 장신인 조지타운대의 패트릭 유잉도 당시 신입생이었다.

 

우승 다음날 소식을 대서특필한 샬럿 뉴스.

 

신입생 조던은 전국구 스타가 됐다. 대학 2학년 때 그는 더욱 농구 연습에 매진했다. 그는 수비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딘 스미스 노스캐롤라이나 감독의 개인교습을 받았다. 덕분에 조던은 대학 2학년 때 ‘올해의 대학농구’ 선수로 선정됐다. 

대학 3학년생이 되자 그는 이미 대학 농구 최고의 스타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친 스포트라이트에 그는 부담을 느꼈고 경기는 잘 풀리지 않았다. 2학년 때보다 못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그가 내린 결정은 머리카락을 깎는 것이었다. 그나마 짧은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냈다. 진정한 ‘민머리’가 된 것이다. 머리를 자른 후 그는 다른 선수가 됐다. 조던은 헤어컷 후 좋은 경기를 펼쳤는데 경기 직후 샬럿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머리카락은 너무 길었다. 지난 뉴욕 원정 경기에서 돌아온 후 헤어컷을 했고 머리카락은 나에게 징크스였다"라고 말했다. 조던은 2학년 때 못지않은 활약으로 ‘올해의 대학농구 선수상’을 2년 연속 차지했다.  

 

대학 3년을 마치고 그는 고민을 했다. 4학년을 건너뛰고 NBA에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스미스 감독과 장시간 대화를 한 후 프로 전향을 선택했다. 그리고 시카고 불스에 의해 전체 3번으로 지명됐다.

조던이 프로 전향을 발표하자 3번 지명권을 받았던 시카고 불스의 로드 쏜(Rod Thorn) 단장은 조던의 지명을 원했지만 다른 옵션도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시카고 트리뷴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위대한 선수다. 그러나 웨이먼 티스데일은 아직 잠재력을 극대화시키지 못했다. 샘 부위는 누구나 원하는 센터다"라고 평가하며 여러 옵션을 고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NBA 데뷔에 앞서 조던은 미국 대학 농구 선수가 주축이 된 미국 올림픽 대표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미국은 1984년 8월10일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남자 농구 결승에서 스페인을 96-65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대표팀 동료는 웨이먼 티스데일, 샘 퍼킨스, 패트릭 유잉, 스티브 알포드, 제프 터너, 번 플레밍, 앨빈 로버트슨, 조 클라인, 존 콘칵, 크리스 멀린, 레온 우드 등이었다. 모두 대학생이었다.

샬럿 옵저버지는 1984년 남자 농구 미국 올림픽팀에 대해 1960년 올림픽 팀(오스카 로버트슨, 제리 웨스트, 제리 루카스, 월트 벨라미 등) 이후 최강팀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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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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