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Shutterstock
꽃은 흔들리며 핀다고 하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흔들리며 꽃을 피워도 마음이 꺾이면 그 꽃은 오래 가지 못할 수 있다. 꽃을 피워도 오래 향기를 전하면 더욱 좋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의 마음에 새긴 문장은 ‘중꺾마’로 젊은 세대에게 널리 퍼졌다. 애초에 한국팀에게는 매우 낮은 승리 확률이 예측되었다. 통계전문업체 ‘옵타’는 한국의 포르투갈전 승리 가능성을 19.3%로 예측했다. 축구 통계 매체 '파이브 서티 에잇'의 한국 16강 진출 가능성은 9%였다.
하지만, 한국 팀은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의 문턱을 넘었다. 그것도 승부차기가 아니라 2:1 멋진 필드골 승리였다. 아무리 예측 데이터가 정확성이 있다고 해도 축구는 인간이 하는 일이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자연과학에 한정됨을 잘 보여주는 일이었다.
물론 브라질 전에서는 비교적 실점을 곧잘 해서 패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인간적인 경기였다.
예측하지 못한 슛이 나온 것은 또한 꺾이지 않은 마음 덕분이었다. 백승호의 왼발 중거리 슛이 브라질의 공장을 통쾌하게 갈랐다. 축구 통계사이트 ‘폿몹(Fotmob)’에 따르면 백승호의 골이 갖는 기대 득점(xG·expected goals)은 0.04였다. 기대 득점은 선수위치·골문까지의 거리·슈팅각도·패스유형 등의 데이터에서 분석한 득점 확률이다. 0.04의 경우 100번 차면 4번 들어간다. 최고의 전문가도 감탄했다. BBC 해설위원 크리스 서튼은 백승호의 골을 본 후 “엄청난 골이었다. 25야드 밖에서 때린 슈팅은 (골키퍼) 알리송조차 막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그는 인간 문어로 불릴 만큼 경기 예측을 탁월하게 내리는 전문가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골은 또 있었다. 포르투갈전에서 손흥민이 장거리 드리블에 이은 황희찬에 패스한 골이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한 장면도 월드 클래스 수준이었다. 미리 공간 패스를 통해 단번에 넣는 골에 대해서 더 이상 사족을 달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연장전, 체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끝까지 꺾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응원 문화가 변했다.
지고 있다고 해서 자리를 뜨거나 텔레비전을 끄지 않았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비난의 정도나 대상도 달라졌다. 비판은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 애초에 서울 한복판의 참사로 시내 응원전은 출발부터 고난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공식 응원전을 취소했다. 따라서 붉은 악마 차원에서 응원전이 펼쳐졌다. 어느 때보다 안전을 최우선 한 응원전이었고, 시민 정신은 빛을 발했다. 쓰레기는 잘 정리했고, 뒷정리도 깔끔했다. 뒷정리는 마음에도 있었다. 선수들에게 개인적으로 비판을 하거나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물론 비난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예년에 비하면 덜했다. 과정 자체를 즐기는 스포츠 관전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결과가 나쁘다고 과정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는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다. 어쩌다가 한 번 국가대항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축구를 즐기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더욱 성숙해진 면도 있다.
가나 축구 응원단은 말했다. “아시아 지역이라 신체적인 조건에 한계가 있음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영국 BBC를 비롯한 유수의 외신들도 한국팀의 이런 점들을 호평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전력을 잘 파악하고 이에 토대를 두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과정을 즐기고 다음 단계를 가기 위한 디딤돌로 삼으면 된다. 결과는 졌어도 멋진 플레이와 골을 월드 클래스 수준으로 넣은 수확이 중요할 뿐이다.
백승호의 말은 이에 부합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덧붙여 그는 “축구공은 둥글다. 경기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다.”라며 “앞으로 더 발전하겠다. 이전처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드리겠다.”라고 언급했다. 지금의 성과를 디딤돌 삼아 좀 더 나아가려는 자세 그라고 이를 격려하는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대로 자신만만하게 과신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기본 예의와 인성이 미흡한 선수들은 결국 몰락을 면치 못했다. 우루과이의 후아레스,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대표적이다. 가나는 최선을 다하고 기본 예의를 지킨 한국을 응원했다. 그 예의는 단순히 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건실한 파이팅이었다.
응원 문화가 바뀐 근본 배경에는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그 축구선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예전에는 축구선수와 우리는 별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SNS 등을 통해 우리는 그 경계가 상대적이라는 점을 잘 알게 되었다. 누구나 다 플레이어다.
어쩌면 일반 시민들도 생존 경쟁에 몰려 결과로만 평가하는 시스템에 피로증을 갖고 있기에 축구 응원과 평가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축구선수를 대하듯 미래에 우리의 평가 문화는 달라질 것이고, 그렇게 해야 국가의 미래도 보장될 것이다.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은 없어도 흔들릴 때 정신을 얼마나 제대로 유지하는가에 따라 미래에 피는 꽃은 그 생명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결실도 좌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