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촉박할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가장 많이 한 경험은, 중요한 미팅에 갈 때였다. 다른 일로 늦게 출발해서 급하게 운전하고 갔던 경험이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격하게 운전했다. 평소에 필자가 운전하는 차에 탄 친구들이 그랬다. 너무 지루하게 운전한다고 말이다. 차선도 웬만해서 안 바꾸고, 속도도 그리 내지 않는다. 지금은 좀 개선(?)됐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그랬던 내가 과격한 운전이라니.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지, 나조차 의아하다. 그때는 시간에 늦지 않는 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사고의 위험조차 대수롭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여유 있게 출발했지만, 꽉 막힌 도로로 인해 가슴을 졸였던 경험도 있다.
처음에는 여유 있는 마음이었지만,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주는 도착 예정 시간이 늘어날수록 초조함이 깊어졌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는 거라면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도착 예정 시간이 미팅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암담한 심정이 밀려왔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잘못된 결과에 대한 여러 일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런 장면이 떠오를수록 마음은 더 급해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운전할 때는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틈만 나면 끼어들고 급브레이크를 여러 차례 밟기도 했다.
또 다른 시간에 대한 압박도 있다.
마감 시간이다. 마감 시간을 활용해서 집중력을 높일 수도 있지만, 너무 잦으면 심장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대비, 해야 할 것이 많으면 집중력조차 발휘되지 않는다. 머릿속이 까맣게 되거나 흐트러진다. 잘 정돈된 책상을 두 손으로 흩트리는 것처럼, 엉망이 되는 거다. 어떤 때는, 심장의 떨림이 손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손이 떨리는 느낌은 또 새롭다. 그렇다고 다시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건 아니다.
마음은 이미 저 앞인데, 몸은 지금 자리에 있는 기분도 든다.
아이들 운동회에서 엄마들이 앞으로 넘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소싯적 젊고 날렵해서 잘 달렸던 기억만 있지, 현재의 나이와 체중이 늘어난 것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몇 미터 앞에 있는데 몸이,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거다. 그러니 앞으로 넘어지는 거다. 필자도 그랬다. 예전에 아이 운동회에서 이어달리기에 참여했는데, 다리가 천근만근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 왜 이러지? 이러지 않았는데?’ 달리는 내내 이 생각이 계속 들었다. 체육 교육과 자체 체육대회에서, 릴레이 대표로 출전했던 전적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긴박했던 시간을 떠올리니, 그때의 마음이 다시 느껴진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순간들이다. 그것 하나만 머릿속에 있었다. 그러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마음에 차지도 않았다.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 정도로 긴박했고 간절했고 두려웠다. 그렇다. 두려웠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두려움을 불러왔다. 돌이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심지어 이럴 때도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방법(?)으로 미친 듯이 이동해서,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거래처 담당자는 아직 오지 않았었다. 심지어 2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아무 말 없이 말이다. 이때 든 생각은 딱 이거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니?’
혼자만 미친 사람처럼 날뛴 느낌이었다.
두려움이 덮쳐오면 이렇게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목적을 위해서만 달려간다. 사고의 위험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다.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아니, 둘 수가 없다. 모든 게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든다. 이럴 때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다. 내려놓는 거다. 긴박함을 내려놓는 거다. 이거 아니면 끝이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거다.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의 짐을 내려놓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안정된다. 심장이 안정되고 호흡이 안정된다.
달라진 건 하나다.
마음이다. 두려움에,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은 거 하나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지금까지 보였던 눈앞의 모습마저 달라 보인다.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도 말이다. 어떻게든 제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어쩔 수 없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기 위해 전화하면 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넘어갈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자기도 좀 늦을 것 같다며, 천천히 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전화하지 않았으면 전혀 생각지도 듣지도 못할 말이었을 거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건 행동이다.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행동이 아니라, 아닌 건 아니라는 마음으로 체념하는 용기를 발휘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처럼,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청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에 가득했던 두려움이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희망이 돋아난다. 마음에 평화가 오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차분해진 마음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오고, 더 좋은 기회로 전환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마음이다. 마음에 두려움이 아닌 평화와 안정이 머물도록 힘써야 한다. 그래야 모든 어려움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