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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본래의 뜻이 있겠지만, 모든 것은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제목의 영화도, 이런 의미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목만 보면, 같은 상황이라도 시점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단순히 감정의 상태에 따라 맞고 틀리고가 결정될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시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시점이 다르다는 건 상황이 다르다는 말이 된다. 외부의 상황이든 내부의 상황이든 무언가가 달라졌기 때문에, 톱니바퀴의 톱니가 맞물리는 것처럼, 정확하게 들어맞게 되는 거다.
보험회사 직원분이 했던 말 중에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분에게는 고객 리스트가 있었다. 한 번 만났던 사람은 이 리스트에 포함된다. 새로운 상품이 나오거나 상품에 관한 새로운 정보 혹은 정책의 변화가 있으면, 그 내용을 전달한다.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메일로 보내기도 한다. 그때는 카톡이 없던 시대라, 이 두 가지가 거의 유일했다. 아! 가끔 만나서 전단을 주기도 했다. 순서를 정해서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약속을 잡아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것 같았다. 시간이 안 되면 잠시 들려, 전달할 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참 열심히 하신다는 생각과 함께 의문점이 들었다.
‘관심 없다는데 왜 계속 얘기하지?’
그래서 물어봤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관심이 없고 추가로 보험을 들만한 여력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 왜 계속 얘기하세요?” 이분은, 당연히 그런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는 표정으로 미소 지으시더니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요. 지금은 필요 없을 수 있지만, 언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때는, 저도 모르고 고객님도 몰라요.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니 계속 말씀드리는 거예요.” 언제 출전할지 모르는 대기 선수와 같은 마음으로, 상황에 상관없이 계속 준비하고 시도한다는 의미였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니 말이다.
좋은 예를 하나 들어주셨다.
“암보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본인은 아직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친구 중 한 명이 암에 걸려요. 그 친구도 건강했던 친구였는데 말이죠. 병도 병이지만, 엄청난 병원비와 기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했는데요. 그 친구가 들어놓은 보험이 있던 거예요. 그 혜택을 직접 눈으로 본 거죠. 이때 제가 암보험 상품을 추천하면 어떨까요? 전처럼 관심 없다고 할까요? 보험을 들지 않을 순 있어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명확하게 되었다. 필자도 그랬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험은 아니지만,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물건에 관심이 쏠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자주 듣거나 내 상황과 맞을 때가 그랬다. 인연이 닿았다고 해야 할까?
책도 그렇다.
많이 들었고 알고 있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 있다. 지레짐작 때문이다. ‘그냥 그럴 거야!’, ‘별 내용 없을 거야!’ 등등 선입견을 품고 살펴보지 않게 되는 거다. 한편으로는 질투심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나와 별 차이 없는 것 같고 나도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만 성공이라는 열매를 맺은 걸 보니 질투가 날 수밖에. 그래서 멀리서만 슬쩍슬쩍 살피기만 하고 손을 대지 않은 책들이 있다. 그런 책 중 하나를 어제 만났다. 마치 나를 빨리 읽으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그렇게 필자 앞에 나타났다.
'역행자'
그 책의 제목이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랜 시간 올라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읽었고, 이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었다. 그래서 관심은 두지만, 앞서 말한 질투심이, 필자에게 더는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서점에 갔을 때도, 잠시 들고 훑어보는 게 전부였다.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하는 생각에 검색하면 대기가 줄을 이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인연이 없는 책인가 보다 하면서, 알고만 있는 책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냥 집어 들고 읽으면 될 정도로, 내 앞에 바로 나타난 거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때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시절 인연이라는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온열 찜을 하는 곳이 있다.
아내가 다녔던 곳이었는데 피곤해하는 나를 보고 한번 체험하라고 해서 갔던 곳이다. 너무 개운해서 30회를 끊고 틈날 때마다 가서 땀을 뺐다. 땀을 흘리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딱 맞았다. 개운한 기분이 좋아 정기적으로 다녔는데, 아내가 다리를 다치고 이런저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몇 달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방문하기 시작했다. 아내도 몸을 추슬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잘됐다 싶어 이곳에 다시 가자고 했다. 그렇게 며칠을 오가던 중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장이 하나 있다.
갈아입을 옷과 수건이 들어있는 장이다. 그 위에 책이 몇 권 진열되어 있는 건, 예전에도 봤었다. 하지만 관심을 두진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옷을 꺼내려 문을 여는데, 짙은 주황색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책이었다. <역행자> 기분이 묘했다. 바로 그 책을 집어 들고, 찜질하는 칸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들어가면, 50분으로 알람을 맞춘다. 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었다.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에 하루 정도 책을 빌려달라고 해서 가져왔다. 저녁을 먹고 읽었고, 출근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 마다 읽었다.
이 책에서, 필자가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를 명확하게 꼬집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스스로 비참하다고 여긴 삶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한 이야기가 처음에 나온다. 그리고 자기 모습처럼 변화할 수 있는 7단계를 제시한다. 첫 번째 단계가 ‘자의식 해체’다. 과잉 자의식으로,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잘못되는 상황 모두를 남과 사회 탓으로 돌린다는 거다. 인터넷 뉴스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이 대체로 그렇다고 한다. 시기와 질투로 객관적인 시선을 갖지 못한다. 필자는 남과 사회 탓을 하진 않지만, 질투의 마음 때문에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았었다. 저자의 말처럼, ‘자의식 좀비’ 혹은 ‘자의식의 꼭두각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나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마음에 찌꺼기가 껴있으면,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다.
이런 것과 같다. 빨래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보고, 왜 빨래를 했는데도 더러우냐고 묻는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미소 지으며, 할아버지의 안경을 벗기고 깨끗이 닦아서 다시 씌워드렸다고 한다. 내 안경이 지저분한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한 거다. 마찬가지다. 마음의 안경을 닦아야 한다. 맑은 마음으로,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하고 바꿀 게 있으면 바꿔야 한다. ‘저 사람은 저래서 가능했지!’, ‘그래도 나보다는 상황이 좀 괜찮았네!’ 등의 마음을 갖는 건 곤란하다. 핑계를 댈 만한 그 사람의 조건에 빠져, 시도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 더 나은 나를 위해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