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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안 되는 것이 있다.
좋은 것을 알지만 하지 않는 행동이 있고, 나쁜 줄 알지만, 하게 되는 행동이 있다.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은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안타깝게도 행동은, 머리가 아닌 가슴의 의지에 무게를 실어주고 손을 들어준다.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자주 가는 술집이 있는데, 닭발이 그렇게 맛있다고 한다. 매콤한 맛도 좋고, 국물에 밥을 볶아서 김 가루를 뿌려 먹으면 기가 막힌다고 한다. 한번은 생각나서 포장해서 집에서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맛있긴 한데, 먹고 난 다음 날에는 꼭 속이 안 좋아. 근데 그걸 알면서도 또 생각나서 먹게 돼.”
공감됐다.
다음날 어떤 힘듦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행동할 때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에 먹으면 다음 날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하지만 배고픔을 못 참고 먹는다. 술 마실 때도 그렇다. 여기까지만 먹으면 딱 좋은데, 한 잔이 더 당긴다. 더 마시면 다음 날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 한 잔을 마신다. 조금 더 늦게 자면 다음 날 원하는 시각에 일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지만, 지금에 더 집중한다. 가슴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다. 어쩌면 충동이라고 볼 수 있다. 내일은 없고 오늘만 있는, 후회할 걸 뻔히 알지만 하게 되는 충동 말이다.
행동이, 머리보다 가슴을 더 따르는 이유가 뭘까?
머리는 생각이고 가슴은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봤을 때는, 행동은 결국 감정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강연을 듣고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새로운 도전도 결심한다. 하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행동이 나뉜다. 강의장에서 한 다짐을 실행하는 사람과 그냥 덮는 사람이다. 전자는 감정까지 움직인 것으로 보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논리로 봐서는 그렇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생각이 전환되고 도전해 보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슴은 가만히 있었는가? 아닐 거다. 콩닥콩닥 뛰고 있었을 거다. 아니면 미친 듯이 뛰어댔을 수도 있다. 이는, 감정도 함께 동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왜? 누군가는 행동하고 누군가는 행동하지 않을까? 강의장을 나오면 그렇게 날뛰던 감정이 왜 쪼그라들까?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믿음이다. 될 거라는 믿음의 연료가 계속 충족돼야 한다. 믿음의 연료 대신 의심의 찬물이 들어오면, 감정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감정은 현재의 상태가 아닌 미래의 상태로 움직인다. 현재의 가능성이 아닌, 미래에 이미 이뤘다는 상상이 감정을 움직인다는 말이다. 코칭에서도 고객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시점을 ‘상상’으로 본다. 원하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를 이미지로 그려보게 한다. 이미지가 구체적일수록 에너지가 올라온다. 감정 일어났다고 볼 수 있는 거다. 여기에 믿음이 더해지면 어떨까? 에너지는 최고조에 이른다. 따라서 끌어올린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믿음이다. 이미 이뤘다는 믿음이다.
믿음은 그냥 있다고 생기지 않는다.
그 방향으로 계속 마음을 보내야 한다. 생각을 보내고 감정을 보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원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있다. 이 시점이 중요하다. ‘에잇! 뭐야!’라며 접으면 더는 없다. 원하는 방향은 아니지만,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방향이라 믿고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방향으로 가는 이유 말이다. 그러면 그 이유를 찾게 되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내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레 믿음이 유지된다. 유지되는 믿음을 통해 감정이 행동을 이끌게 된다.
항상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 아닌가! 알면서도, 다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 이번에는 아닌가?’라는 생각이 더 크게 차지한다. 왜 그럴까?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방법을 찾는다는 건, 원하는 방향을 고집한다는 말과도 같다. 필요하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그렇다. 내가 원하는 방향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던 방법으로 필요한 상황이 이뤄지진 않았다.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뤄졌다. 뜻하지 않은 사람과 상황을 통해 ‘어?’하면서 이뤄졌다는 말이다.
그냥 믿기만 하자.
지금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나에게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믿기만 하자. 방법을 찾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족하다. 모든 것은 나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믿으며 차분하게 흐름을 타면 된다. 바닷물에 몸을 띄우는 방법도 그렇지 않은가?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뜬다는 믿음으로 가만히 있어야 떠 있을 수 있다. ‘혹시나?’라는 마음에 힘을 주고 임으로 어찌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대로 가라앉거나 첨벙대게 된다. 짭짜름한 물을 마시는 건 덤이다. 이것만 기억하자. 마음에 힘을 빼고 맡기면서, 필요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믿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