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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부터 1995년 사이에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는 선수들의 파업으로 리그가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다. 구단주들은 마이너리거나 은퇴한 선수들을 불러들여 ‘95 시즌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고 스프링캠프가 대체 선수들로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 연출됐다. 메이저리그답지 않은 플레이가 자주 나왔고 엉뚱한 플레이도 연일 이어졌다. 한 감독은 “야구 인생에서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메이저리그 파업은 뉴욕 남부 지방 법원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후에 대법원 판사로 임명됨)가 3월 31일 구단주들에 대한 예비 명령을 내림으로써 종료됐다. 판사는 선수들과 구단주들은 새로운 협상안이 나올 때까지 이미 만료된 단체협약 조건에 따르며 일단 시즌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4월에 파업이 끝나고 대체 선수들은 마이너리그로 돌아가거나 은퇴를 했다. 판결이 내려지기 전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버드 실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나 구단주들이 대체 선수로 메이저리그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넌센스였고 코미디였다. 그렇게해도 메이저리그는 어떻게든 돌아갈 것으로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 관료들은 1995년 당시 메이저리그 구단주들, 커미셔너와 비슷한 사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의료 개혁 부문에서는 그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1995년 당시 미국 사회는 ‘전국민의 유흥’인 메이저리그 야구의 중단으로 사회적인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지금 한국 의료계도 한국 사회에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통계 전문 회사인 스태츠가 1995년 대체 선수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 사진은 그 커버이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23일 브리핑을 통해 의료계에서 참여하지 않아도 여전히 의료특위를 가동하고 병원도 대체 의사로 채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가 브리핑을 하는데 필자에게 파노라마처럼 떠오른 장면은 1994-95년의 메이저리그 파업 당시의 상황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버드 실릭 커미셔너처럼 보이고 정부 관료, 병원장, 대학 총장들은 MLB 파업 당시 구단주들처럼 느껴졌다. 장 수석은 “지난주부터 군 복무를 마친 전문의들이 전임의로 계약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와 맞물려 기존 전임의들도 상당수 복귀하면서 빅5 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전임의 계약률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4월 19일 기준으로 빅5 병원의 전임의 계약률은 58.1%로 1주 전 대비 10%포인트 이상 상승하였고, 집단행동 초기였던 2월 말에 비하면 24%포인트 이상 대폭 올랐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핀트에 맞지 않은 숫자는 계속 나왔다. “100개 수련병원의 전임의 계약률은 55 9%로 1주 전 대비 5.5%포인트 상승하였고, 2월 말 대비로는 22%포인트 이상 올랐다.”
1995년 메이저리그 야구에도 이런 데이터가 있었을 것이다. 마이너리그에는 수천 명의 선수들이 있고 그들은 싱글A, 더블A, 트리플A에서 이런저런 성적을 냈으며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도 충분히 잘해낼 것이라는 데이터 말이다.
지금 한국 의료계 이슈는 병원의 근간인 전공의들이 노동 착취를 당하면서 정부에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며 의사들을 잡아가려는 분위기속에서는 일을 더는 못하겠다는 인권과 인격의 이슈다. 그런데 정부는 엉뚱한 데이터만 들고 나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마치 MLB 구단주들이 대체 선수를 이야기하며 ‘파업이나 하는 메이저리거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과 비슷하다.
왜 2천명인지에 대한 과학적, 합리적인 답을 못 주면서 계속 엉뚱한 데이터를 꺼내는 정부가 아쉽고 민망하다.장 수석은 “정부는 전공의 집단행동 장기화와 교수, 사직 등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 추가적인 비상 진료 대책도 선제적으로 마련하여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상급종합병원과 공공병원에 군의관과 공보위 총 396명을 파견 배치하였고, 비상진료를 위해 의사 591명, 간호사 878명을 신규로 채용했다. 시니어 의사 모집과 진료지원 간호사, 즉 PA 간호사 추가 채용도 계속해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상급종합병원과 진료 연계가 가능한 협력병원을 당초 100개에서 185개로 늘려나가는 동시에 암과 같은 전문 질환의 적기 치료를 위한 진료 협력 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공의들과 대화하면서 이 사태를 풀어가는 게 아니라, 즉 메이저리거들과 대화하면서 풀어가는 게 아니라, 대체 의사, 대체 선수로 빈 자리를 메우겠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태도인가.
전공의 대표 한 명을 한 번 만나서 이야기 들은 것으로 대화를 다했다고 착각하는 것도 많이 아쉽다. 정부는 대화 테이블에 나와 원점부터 시작해보자고 왜 할 수 없는 것인가.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가. 이는 원점부터 대화하면 의료 현장에 돌아오겠다고 한 전공의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착취만 할 뿐 그들에 대한 신뢰는 없는 것이다. 먼저 신뢰를 보여줘야 그들은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한국 의사들은 1994-95년 메이저리거에 비하면 착한 편이다. 전공의들은 일단 원점으로 돌아와 대화를 하면 의료행위를 하면서 대화로 풀어가겠다고 하는데, 1994년 메이저리거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채워주지 않으면 협상 자체도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장 수석은 “정부의 결단에 대해 아산의료원장, 서울아산병원장, 울산대병원장, 강릉아산병원장께서 합동으로 의대 증원 문제가 대학 자율 결정 등으로 유연하게 전환됨에 따라 의대 교육과 병원 진료도 전환점을 마련할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면서, 병원 스스로 교육 환경 개선에 적극 나설 것이니 전공의들도 신속히 복귀해 줄 것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전공의들은 존중받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하고 그 존중의 출발이 의대 증원 2000명을 원점으로 돌려 대화하자는 것인데, 정말 착한 오퍼를 하고 있는 것인데, 정부와 병원장들과 대학 총장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4월 25일부터 정부, 의료계, 환자단체, 시민단체, 전문가를 비롯한 각계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하게 되는데 이 위원회가 원점부터 논의하게 된다고 하면 당연히 의사들은 참여할 것이고 전공의들은 의료 현장으로 복귀할 것이다. 이들은 증원을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게 아니라 논의로부터, 즉 존중함으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2천명을 정해놓았으니 너희들이 바꿔봐’ 하는 것은 얼마나 무례하고 무지한 일인가.
의료계가 증원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니고 원점 재논의를 하자고 하는데도 정부는 계속 2000명을 기준으로 “당신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숫자를 갖고 오면 조정하겠다”는것 자체가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장 수석은 “국민과 환자의 애타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의대 증원 백지화, 원점 재검토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의사단체는 이제라도 의료개혁 특위에 참여해 주시고 대화에 응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필자는 정부에 간곡히 요청한다. “국민과 환자의 애타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의대 증원만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정부는 이제라도 원점 재논의 대화에 응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원점 재논의만이 국민을 위하고 의료를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