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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방향은 내가 결정한다 [김영태 칼럼]
“근묵자흑(近墨者黑)”
검은 것을 가까이하면 검은 사람이 된다는, 사자성어다.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다른 사자성어로는, “근주자적(近朱者赤)”이 있다. 붉은 것을 가까이하면 붉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검은색과 붉은색이라는 색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의미는 같다. 사람도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주변 환경이라는 것은 사는 곳의 여건일 수도 있으나, 사람일 가능성이 더 크다. 주변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성격이나 말투와 행동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자성어들이 많이 있다.
사람과 주변 환경은 불가분의 관계다.
불가분의 관계가 여럿 있지만, 사람과 주변 환경만큼 끈끈한 관계도 없다. 그 차이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예가 군대다. 군대라는 환경은 사람의 성격이나 말투, 행동을 바꾸기도 하지만, 체격을 바꾸기도 한다. 삐쩍 말랐던 사람이 군대 가서 휴가 나온 모습을 보면, 어깨가 쫙 벌어진 모습에 놀란다. 뚱뚱했던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군더더기 없는 몸이 돼서 나온다. 건강하고 보기 좋게 말이다. 성격이나 말투도 그렇다. 수줍고 소심했던 사람이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말 많고 까불던 사람의 점잖아진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더 좋게 보인다. 안타깝게도, 정반대로 변한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많이 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보통 이렇게 말한다. “군대 다녀온 거 맞냐?” 사실 나도 이 얘기를 자주 들었다. 어쩌면 내가 해병대를 나와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가는 군대, 끌려가지 말고 내 발로 가자는 신념으로, 자원입대했고 무사히 잘 지내다 제대를 했다. 백령도라는 낯선 곳에서 근무했는데, 참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 워낙 내성적이고 거칠지 못한 성격이라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많이 걱정했다. 좋지 않게 변해서 온 지인들도 있고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도,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변할까 우려가 됐던 거다.
그래서 결심했다. 절대 사람들이 우려하는 모습으로 변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2년 2개월의 시간을 보냈고, 달라진 건 체격 말고는 거의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고 앞서 언급했듯이, 군대 다녀온 거 맞냐는, 좋은 소린지 나쁜 소린지 헷갈리는 말도 많이 들었다. 직접적으로도, 변한 게 없다며 신기해한 친구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이때 깨달은 게 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거지, 달라진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는 것을. 2년이라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면 모르겠다. 그때는 사람이 환경을 거스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 깜짝 놀랄만한 사건 사고도 가만 보면, 주변 환경에 영향받은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환경에 영향을 받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내가 오른쪽으로 가겠다고 할 때 주변 사람 모두가 왼쪽으로 간다고 하면, 한두 번은 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나만 다른 선택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외롭다는 느낌도 흔들림에 한몫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외롭다는 생각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을 만큼 힘들 수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어울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거다. 이걸 선택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은 다른 친구를 사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선택지가 없다면 어떨까? 쉽게 판단하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정당화될 순 없다.
주변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뉴스에 나오는 많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다 이해하고 넘어갈 순 없는 일이다.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는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는 내가 선택해야 한다.
다양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많은 사람이 가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 쉽진 않겠지만, 그 길의 끝에 내가 원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혹 잘못된 길을 선택했더라도, 되돌아올 수 없을 만큼 너무 가지 않도록 매일 잘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