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나뭇가지는 외부에 있다. 하지만 마음은 내 안에 있다, 사진출처: 셔터스톡
영화 <달콤한 인생> 첫 장면이 떠오른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휘날리는 장면과 함께, 주인공 배우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것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바람과 나뭇가지는 외부에 있다. 하지만 마음은 내 안에 있다.
결국, 외부에서 벌어지는 어떤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러고 보면 일리가 있다. 영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신세계> 영화의 한 장면도 소개할까 한다. 경찰이지만 조직폭력배에 잠입하고 있는 경찰이 있다. ‘이자성’이라는 인물이다. 이자성을 끔찍이 아끼는 형이 있다. ‘정청’이라는 인물이다. 정청이 습격을 당하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이자성과 독대를 하게 된다. 정청은 이자성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터였다.
마음만 먹었으면 이미 이자성을 처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아끼던 동생이 첨자였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배신감으로, 비참한 마음이었을 거다. 그런 마음을, 평소와 다르게 매우 신중한 모습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 마음을 그대로 되돌려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숨을 거두기 직전, 경찰로 돌아갈지 조직에 있을지 입장을 똑바로 하라며 조언까지 해준다. 왜 그랬을까? 눈 앞에 펼쳐진 현실보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바람과 나뭇가지는 심하게 흔들렸지만, 마음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이자성은 조직을 접수하게 된다.
<달콤한 인생>으로 돌아가면,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젊은 시절을 온통 자신의 보스를 위해 일한 ‘선우’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보스의 절대적 신뢰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스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젊은 애인이 있던 거였다.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다며 살펴보라는 명령을 내린다. 만약 사실이라면 처리하라는 명령까지 받는다. 선우는 그녀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현장을 목격했지만, 그들을 놓아준다.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보스는 그런 선택을 한 선우를 처벌한다. 한순간에 조직의 적이 된 거다. 전쟁이 치러지고 선우는 조직의 보스를 사살하게 된다. 그때 했던 명대사가 하나 있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이 한마디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오랜 시간 충성을 다한 자신에게, 그들을 풀어줬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홉 가지를 잘했는데 한 가지, 그것도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 일로 자신을 버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바람과 나뭇가지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아니 어쩌면 흔들렸을 수도 있지만, 보스의 마음이 매우 심하게 흔들렸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었다. 바람과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흔들리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 <신세계>를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외부 영향이 심하게 흔들려도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는 건 자신이다. 결정은 자신이 하고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면, 자기 인생에 주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자기 인생에 주인이 되고 싶다면, 바람과 나뭇가지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