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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비추는 마음 [김영태 칼럼]

비추는 사람이 아니라 그 빛을 보고 가는 사람이 중심이 돼야, 쓸모 있어지는 선한 마음

등록일 2023년08월01일 09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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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hutterstock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누군가에겐 악몽의 시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재도약의 시간일 수도 있겠다. 혹은 그냥 의미 없이 보낸 시간일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재도약의 시간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1학기를 다녔는데, 마음에 살짝 바람이 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부터 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2학기는 거의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어렵다는, 선동열 방어율보다 낮은 학점을 받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마음에 군대에 갔다. 그래서 나는 군대를, 내 삶의 방향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사용했다.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다 알겠지만, 군 생활에 절반 이상은, 나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여력이 없다. 여유롭게 딴생각을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군대의 이런 시스템 덕분에 빨리 적응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바깥세상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신없던 졸병 시절의 시간이 비록 그때는 지옥 같았을지언정 지금은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근무한 곳은 백령도였다.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는 부대도 있지만, 해안 초소 경비를 중점으로 하는 부대도 있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돌아가면서 임무를 바꾸는 순환 방식이었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 간 곳은, 해안 초소였다. 한겨울에 처음 배치받은 곳이 해안 초소 경비라니. 지금은 어떤 느낌인지 알지만,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딴생각할 시간이 없었으니 말이다. 배치받은 날 바로 근무 배정을 받았다. 그것도 한밤중에.

 

가장 열악한 조건이었다. 한겨울, 한밤중, 처음 근무, 거기다 산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등등. 근무 초소는 작게 나뉘어 있어서, 한 초소에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근무한다. 상병쯤 되는 선임이 옷을 어떻게 챙겨 입어야 하는지 그리고 뭘 챙겨야 하는지 데리고 다니며 설명해 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임무를 알려줬다. 랜턴을 비추는 방법이었다. 근무는 2인 1조로 서게 된다. 선임이 있으면 후임이 있는 법. 선임의 앞길을 비춰야 하는 랜턴. 이 랜턴을 어떻게 비춰야 하는지 알려주는 거다.

 

초소는 산을 타고 올라가야 있다. 산길은 좁다. 그래서 앞뒤로 이동을 해야 한다. 선임이 앞서고 후임이 뒤에 따른다. 이때 랜턴을 비춰야 하는데, 랜턴 불빛의 위치는 선임의 발 앞이어야 한다. 그래야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거나 헛디디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랜턴 불빛이 흔들리면 어떻겠는가? 정신이 없다.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멀미가 나기도 한다.

 

교육을 제대로 받긴 했지만, 내가 누구인가? 경력자가 아닌, 처음 근무를 서는 신입이다. 그것도 이것저것 껴입은 옷으로 움직임에 범위가 매우 제한적인 신입 말이다. 거기다 이런저런 짐을 짊어져서 내 몸 하나도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나는 이 산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참고로, 밝은 날에도 그리 쉽지 않은 코스라는 것만 알려둔다. 랜턴 불빛이 제대로 비쳤겠는가?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선임이 “그래~ 처음이니까 그렇구나. 괜찮아~”라고 했을까?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다.

 

한마디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한겨울에 땀을 비 오듯 쏟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몸에 흙이 묻은 상태로 도착했다. 첫 근무 신고식을 제대로 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무지에서 선임은 나를 그냥 내버려 뒀다는 거다. 덕분에 밤 바닷바람을 쐬면서,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랜턴을 제대로 비추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처음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에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보폭이나 움직이는 패턴을 알았다면, 예상하고 반 템포 정도 앞서서 움직였을 텐데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 발을 내디딜 때가 돼서야 그곳을 비추게 되었다. 당연히 선임은 자신의 페이스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럼 랜턴을 잘 비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랜턴을 다루는 법을 잘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비추고자 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먼저다.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해서 그 움직임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더 잘 비출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자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필요로 하는 사람을 비춰주고자 한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나 역시도 그렇다. 내가 타고난 역량과 내가 계발한 역량을 통해,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빛을 비춰주고 싶은 마음이다. 여기서, 군 생활의 경험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빛을 비추는 건 나지만, 그 빛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누구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고 잘 살펴야 하는 건, 빛을 보고 가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원하지 않은 전혀 다른 길로 갈 수 있고, 넘어져서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빛을 비추는 사람은 나지만, 그 빛을 통해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은 타인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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