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장시키는 건, 벌어진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시선, 사진출처: 셔터스톡
<나를 외치다>
뭘까? 책 제목일까? 영화 제목일까? 아니면, 예능 프로그램에 하나일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런 느낌을 담은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학교 옥상에 누군가가 올라섰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친구 아니면 선생님 때로는 부모님이 그 대상이 됐다.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그 기회를 빌려 했던 거다. 너무 웃긴 내용이라 한참을 웃었던 기억도 나고,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며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고충도 있었다. 여기서 하나. 웃긴 말이든 생각하게 만든 말이든,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 색깔을 인정해달라는 거였다.
색깔은 상대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는 밥을 빨리 먹는 편이다. 아니, 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쉬는 시간 10분 동안, 4층 오른쪽 끝 교실에서 왼쪽 끝, 반지하 매점까지 뛰어 내려갔다. 라면을 먹기 위해서였다. 이 욕구를 채우기에 10분이라는 시간은 충분했다. 아!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몇몇 친구와 함께했으니, 독보적이라 말할 순 없겠다. 암튼,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도 밥을 빨리 먹어야 하는 환경에 자주 노출됐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빨리 먹게 된다. 그런 줄 알았던 내가 언제부턴가 매우 늦게 먹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함께 드시는 분들의 속도에, 한참 못 미치기 시작했다.
그분들이 빠른 건지 내가 속도가 느려진 건지, 원인 파악을 자세히 한 건 아니지만 암튼 그렇다. 그래서 지금은 밥을 좀 늦게 먹는 편이라 말한다. 밥 먹는 것을 예로 들었지만 대부분 타박(?)을 받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느리거나 급하거나 혹은 못 미치거나 넘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앞서 말한 학교 옥상에서 외친 아이들의 목소리에 담긴 의미도 그렇다.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달라고 말이다.
좀 돌아오긴 했는데, 처음에 언급한 것은, 노래 제목이다. 토요일 오전, 특별한 일이 있어 이동 중이었다. 평소 이동 중에 평화방송 라디오를 자주 듣기 하지만, 오전 9시대에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문득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앱을 실행했는데,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처음 듣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소름이 돋았다.
가사가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 때문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주변에서 이래라저래라 말은 많이 하지만, 어차피 그 사람들이 당신에 인생을 책임져주진 않는다. 그러니 당신의 길을 꿋꿋이 가라고 말이다.
이 노래를 듣는데 왜 소름이 돋았을까?
단순히 가사가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타이밍 때문이었다. 방향을 찾고자 하는 청년들의 멘토가 되어야겠다는, 사명과 비전을 설정한 시점이었다. 그 마음에 딱 들어맞는 노래를, 그것도 평소에 듣던 시간이 아닌 시간에 듣게 됐다는 사실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날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면 듣지 않았을 노래를 듣게 됐다는 게, 나를 소름 돋게 했다.
메시지를 받았다고나 할까?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들리거나 보인 건, 메시지일 수 있다는 생각에 자세히 살피고 생각한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 이유를 살핀다. 그렇게 내가 원하지 않았거나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을 그냥 흘리지 않는다. 그러면 반드시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 시간과 때는 다, 다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그렇게 하면 좋은 점은,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상황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마음에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의 하나다. 상황이 아닌, 그 상황을 해석하는 시선이 나를 평화에 머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