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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칼럼] 지금 내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시선을 밖으로 향할수록 자신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비판만 하게 된다.

등록일 2023년05월02일 09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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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hutterstock

 

 

 

중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장기(將棋)’를 처음 배운 때가.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가 할 줄 아냐며 내 앞에 장기판과 장기 알을 내밀었다. 어른들이 하시는 걸 본 적도 있고, 알까기라고 해서 말을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쳐서 밀어내는 놀이를 해보기도 했지만, 실제 장기를 둬보진 않았다. 친구는 자기도 배운지 얼마 안 됐지만 가르쳐주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갓 배운 사람들의 열정이랄까? 친구는 판을 깔고 장기 알을 그 위에 부었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써진 말과 초록색으로 써진 말을 구분했다.

 

우리는 말을 하나씩 가져가 정해진 위치에 놓았다. 친구는 자기가 먼저 배웠으니 빨간색으로 놓겠다고 하면서, 자기 말을 먼저 놓았다. 그리고 내 옆으로 와서 초록색 말 이름을 하나씩 이야기하며 지정석 같은 자리에 놓았다. 좌우로 대칭이 맞춰지고, 잘은 모르지만, 전투 대형을 갖춘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먼저,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을 해줬다. 어렵진 않은 것 같은데, 좀 헷갈렸다. 친구는 자기가 처음 배울 때 그렸던 것으로 보이는 말의 동선을 그린 그림을 내밀었다. 그걸 보면서 도움이 될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의 비슷하게 시작하니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따라 했다. 친구가 움직이는 말이 뭔지 보면서 그 말이 움직이는 동선대로 따라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그림을 보면서 잘 살폈다. ‘쫄’이라고 하는 조그만 말은 한 칸씩만 움직이면 되니까 별 어려움이 없었다. 말의 동선만 잘 익히면 크게 하기 어려운 게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두면서 말이 움직이는 걸 다 익혔다.

 

그렇게 모든 걸 익혔다고 생각하고, 친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처음에 움직이는 건 거의 비슷하니 그대로 했고, 이후부터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 말을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친구의 말이, 내가 왔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움직이길 바랐다. 어떤 상황이 있는데, 내가 바라는 대로 됐으면 하는 바람처럼 말이다. 마침 내가 원하고 있던 그 자리에 친구가 말을 놓았다. 소름이 돋으면서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이리로 와라! 그럼 내가 잡을 수 있다!’하고 있는데 딱, 그 자리에 거짓말처럼 말이 왔다.

 

“오호!”

 

숨죽이며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질렀다. 그게 뭐라고. 내 말을 들어 친구의 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친구의 말을 빼서, 내 말을 그 자리에 올렸다. 집어 든 친구의 말은 옆에 있는, 장기 알을 담았던 통에 내려놓았다. ‘이건 몰랐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바탕 웃으면서 친구를 지긋이 바라봤는데, 친구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보통 이러면 매우 아쉬워하거나 자기가 실수했다며 뒹굴어야 하는데, 꿈쩍하지 않았다.

 

‘뭐지?’

 

가만히 있던 친구는 나를 올려다보고, 씩 한 번 웃더니, 자기 말로 방금 내가 잡았던 말의 위치에 다시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장군!”

 

‘어? 뭐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말이 갑자기 뛰어나온 느낌이었다. 막을 수 있는 말도 없고, 왕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어딜 가든 잡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전문용어로 ‘외통수’라고 한다. 한참 웃다가 갑자기 멍해진 나를 보고 친구는, 마치 고수인 것 마냥, 이렇게 말했다.

 

“공격할 생각만 하니까, 공격 들어오는 걸 못 보지!”

 

그 후로 장기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 공격하면서 수비도 살펴야 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처음에는 그냥 공격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대의 왕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왕이 잡히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니 말이다. 스포츠도 그렇다. 공격해서 점수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비에서 무너지면 답이 없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어렵게 점수를 냈는데 쉽게 점수를 내주는 걸 보면, 정말 답답해서 보기 싫어진다.

 

공격에만 쏠려 있으면, 수비를 볼 수 없다. 마음의 시선도 그렇다.

 

상대에게만 신경이 쏠려 있으면, 자신을 바라볼 수 없다. 어떤 기준으로 바라볼 때는 더욱더 그렇다. “저 사람은 왜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그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살피지 않는다. 규칙은 각자가 잘 지키라고 만들어진 것이지, 타인이 잘 지키고 있는지 살피라고 만들어진 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것도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보인다.

 

‘아! 저 사람 뭐야?’

 

내가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불편한 마음이 올라온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한 적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식당에서 항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지만, 나도 마음에 안 드는 서비스에 발끈한 적이 있다. 동네에서 과속으로 달리는 차를 보며, ‘쟤 왜 저러니?’하고 생각하지만, 나 역시 그런 적이 있다. 누구나 다 그런 적이 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잘못이 더 커 보일 뿐이다.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무너져가는 자기의 마음을 추스르고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타인의 마음을 무너트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악의를 품고 그러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그런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발견한다. 바로, 타인을 지켜줄 수 있다는 이유다. 어쩌면 나를 공격하는 사람을 원망하듯,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격만 하다 보니, 수비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문득 이 말이 생각난다.

 

“나만 잘하면 돼!”

 

그렇다. 다른 사람 보고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말고, 나만 잘하면 된다. 그러면, 내 마음이 무너질 일도 타인의 마음을 무너뜨릴 일도 적어질 거다.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누구의 마음을 무너뜨리겠는가! 어렵지만 그 어려운 걸 해내야 한다.

 

누구를 위해?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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