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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가 함께 게임을 했을 때다.
게임 이름은 ‘라이어 게임’이다. 게임 진행 방식은 간단하다. 참가자 모두에게 제시어가 주어지는데, 한 사람만 그 제시어를 알지 못한다. 이 사람을 ‘라이어’라고 표현하는데, 어릴 적에 했던 놀이로 치면 술래라고 보면 된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제시어와 연관된 설명을 한다. 마치 스무고개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술래가 제시어를 맞추지 못하도록 에둘러서 표현하면 된다.
‘라이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유추해서 설명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고, 누가 ‘라이어’인지 지목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체로 엉뚱한 설명을 하는 사람이 ‘라이어’일 가능성이 크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어수룩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목당한 ‘라이어’는 제시어를 말하게 된다. 제시어를 맞추면 ‘라이어’의 승리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라이어’의 패배가 된다.
막내가 어디서 알았는지, 이 게임을 하자고 했다. 이 게임은 일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매우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편으로는 ‘라이어’가 정답을 맞히는 모습을 보고 추리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막내가 내민 핸드폰에는 이 게임을 위한 앱이 있었다. 한 사람씩 제시어 보기를 누르면 제시어가 나오거나, ‘라이어’라는 표시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더 재미있는 게임을 위해, 바보 게임으로 진행했다.
바보 게임은 말 그대로,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게임이다. 누구를? ‘라이어’를 말이다.
‘라이어’에게도 제시어가 보인다. 문제는 이 제시어가, 다른 제시어라는 사실이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자신이 ‘라이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왜? 자기도 제시어를 봤으니까. 그래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할 때, 자신이 본 제시어와 사람들이 설명하는 내용을 비교한다. 퍼즐처럼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라이어’가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되고,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살짝 불안해진다. 그래서 이 게임의 승패는 얼마나 설명을 꽈서 하느냐에 달렸다.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 ‘라이어’가 설명하는 모습이 재미있다는 말이다.
제시어가 아닌 다른 것을 너무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자기가 본 제시어를 확신하는 만큼 더 강력하게 설명한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입꼬리를 살짝씩 올린다. ‘라이어’만 눈치를 채지 못한다. 게임을 하면서, ‘아! 그래서 바보 게임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 바보 만드는 거 한순간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게임이니까 웃지, 현실이라면? 오! 끔찍하다. 그게 나라면? 절망 그 자체다.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
우리가 살면서 흔히 하는 실수다. 정확하게 아는 것도 있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말할 때도 있다. 앞선 게임의 ‘바보 라이어’처럼, 마치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맞는다고 주장한다. 착각의 정도가 심할수록 강력하게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와 상황으로 설명을 해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 사람은 실수를 저지른다. 지나고 후회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일 때가 있다. 문제는 그래놓고 또 그런다는 사실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착각인지 살펴야 한다.
내가 바보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애매한 사람을 잡을 수도 있다.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심지어 현실을 비관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누군가한테는 ‘아니면 말고’라며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한테는 목숨과도 같은 매우 묵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명확한 사실이 아니거나 그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면, 그 말을 꺼내는 마음이 묵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