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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다.
별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이라는 것과 거의 움직이지 않아 방향을 잡을 때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아마, 별 중에서 가장 유명한 별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른 별의 이름은 몰라도, 북극성을 모르는 아이도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큰 특징 중에서, 무엇 때문에 유명해졌을까? 조사해본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는 후자의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방향의 기준을 잡아주는 별이라는 사실 말이다.
‘기준’하니, 어릴 때 일화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학년 전체가 함께 체육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선생님이 조회대에 올라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어슬렁거리며 나오는 아이들에게는 빨리 뛰어오라고 했고, 나와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똑바로 서라고 했다. 아이들이 얼추 나오자, 마이크를 잡은 선생님은, 앞에 있는 친구를 가리키며 기준을 잡으라고 했다. 오른팔을 높이 들고 “기준!” 하면서, 크게 외치라고 하면서 말이다.
지목당한 친구는 “기준!”하고 크게 외치며, 오른팔을 높이 들었다.
선생님은 이 친구의 소리에 이어, “양팔간격 좌우로 나란히!”를 외쳤다. 아이들을 두 팔을 펴고 옆으로 이동했다. 한참을 이동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렸다. “야!” 친구들은 얼음이 된 자세로 멈춰서, 선생님을 바라봤다. “야! 기준이 움직이면 어떻게, 어?” 어쩐지 생각보다 많이 이동하는 것 같다 싶었는데, 기준이라고 외친 친구가 옆에 있는 친구를 따라간 모양이었다. 기준 친구는 다시 자기 자리로 갔고, 다시 한번 기준을 외쳤다. 그러고는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기준을 정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자리를 중심으로 퍼지던지 모여야 한다. 그래서 기준의 가장 기본이면서 중요한 조건은, 기준이라고 외치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다. 절대 움직이지 않는 고정성(固定性)이다. 친한 친구하고 멀어진다고 해서, 기준이 절대 쫓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면 기준의 본질을 잃게 되고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탄산이 빠진 미지근한 맥주가 있다면, 마실 수 있겠는가? 아니 마시고 싶겠는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가치는, 기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리더의 덕목에도 필요하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있다고 하자. 내가 바다를 선택할 수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파도가 치는 바다에 배를 띄우고 싶은가? 아니면 잔잔한 바다에 배를 띄우고 싶은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후자라고 말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말하는 파도는, 우리를 단단하게 해주는 시련이나 경험이 아닌, 그냥 지랄 같은 성격을 의미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요동치는 기분 말이다.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리더라면, 함께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조건 ‘하하 호호’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더라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을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리더의 모습이 다르지 않고, 기분에 따라 리더의 모습이 다르다면 어떨까? 같은 상황이라도 리더의 기분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때도 있지만, 매우 심각한 지경으로 몰고 갈 때도 있다면 어떻겠는가? 어떤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리더의 눈치를 살피는 웃지 못할 풍경을 연출하게 된다. 당연히 건강한 공동체의 길은 멀어진다.
“어떤 기준이 있는가?”
구성원들이 어떤 때 당신이 기분이 좋고, 어떤 때 기분 나빠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기준이 상황인가? 당신의 기분인가? 전자라면 옳게 가고 있는 리더의 모습일 테지만, 후자라면 매우 좋지 않은 리더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리더의 위치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함께 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구성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상황이지만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한다면, 매우 심각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기준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니, 기준이, 옳고 그름이 아닌 리더의 기분이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