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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마음은 두 가지 형태로 생긴다.
감사한 마음에, 형태라니? 무슨 소린가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감사한 마음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거의 모든 감정이, 이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절대적인 마음과 상대적인 마음이다. 이건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처럼, 비교의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 절대적인 마음은 외부의 다른 요소와 상관없이 생기는 마음이고, 상대적인 마음은 누군가와의 비교로 생기는 마음으로, 기준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절대적인 감사는 어떻게 생기는가?
절대적인 감사는 내가 현재 머물러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감사하면 생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갈 수 있는 어딘가가 있음에 감사한다.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 어떤 이유가 아니라 내가 지금 보고 있고 듣고 있고 느끼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바로 절대적인 감사라 말할 수 있다. 절대평가처럼 자신 스스로가 기준이 된다.
반대로 상대적인 감사는 어떻게 생기는가?
그것은 타인과의 비교로 생긴다.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여러 이유를 한데 묶으면,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저 사람처럼, 그러지 않아서 감사하다.”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보면서,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한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서, 자신은 언제든 챙겨 먹을 수 있는 여건에 감사한다.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거다. 이 비교가 반대로 되면, 불평이 된다. 그래서 기준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감사한 마음을 갖는 건 매우 좋은 현상이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감사할 일이 생긴다는 말처럼, 내가 생각의 무게 중심을 두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모든 상황을 불평하면서 주변 사람까지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상대적인 감사가 과연 좋은 방법인지를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무조건 다 옳고 좋은지를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자.
결과가 좋으면 방법은 어떻게 하더라도 상관이 없을까?
상대적인 감사는 경계해야 한다.
예쁘게 잘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안에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다. 처음에는 예쁘게 포장돼 있어서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숨겨져 있는 칼날이 있다. 그래서 경계해야 한다. 내가 감사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희생돼야 한다.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좋은 환경이어야 감사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한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감사를 하게 되면 내가 건강한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아픈 누군가를 들춰내야 한다. 아픈 사람을 바라보면 안쓰럽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올라와야 하는데, 그의 아픔을 발판 삼아 자기 건강에 감사하게 된다. 그런 순간이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없는가? 필자는 예전에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순간 머리와 함께 가슴에 찌릿함을 느꼈다. 너무도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에 실망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의 힘듦과 어려움을 보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있고 감사하고 있는 필자를 발견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감사하는데, 왜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끌어와야 할까?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 많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하고 싶은 그 어떤 것 하나만 할 수 있어도 감사할 수 있다. 찾아보면 너무 많아 가슴이 벅찰 수도 있다. 찾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주변에, 아니 내 안에 감사함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자리하고 있는 그 감사에 집중하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발판 삼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