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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겐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출간 강연을 준비할 때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중심 기둥이었다. 책에 담긴 에피소드와 그에 따른 단상이 가지라면, 그 가지들이 뻗어 나오게 된 중심인 기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과 행동을 하게 한 생각 즉,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나름의 철학이 있었으니 책을 출간할 수 있었겠지만, 그 중심 기둥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던 중, 가장(家長)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생각이 뻗어갔다.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이 떠올랐다.
관계의 거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관계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가장(家長)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가족 간의 관계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따라 가족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다.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족이라면, 마음에 응어리가 점점 굳어져 더는 풀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더는 대화를 하기 어렵게 되고, 심지어 함께 하는 자리가 불편해질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가족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고 그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대화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강조한 방법은 같은 신앙을 갖거나 취미를 갖는 것 그리고 가족 간에 루틴을 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경청이 가장 중요하고, 마음을 맞추는 것과 가족이니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부분을 통해 가족의 공동 관심사가 만들어지게 되고, 그 중심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대화가 이루어져야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 이유는, 마음의 교집합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서로의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과정”
이것이 서두에 언급한 중심 기둥이다. 책에 언급한 다양한 에피소드는 이 중심으로 모여든다. 가족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이, 서로의 교집합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말이다. 서로의 교집합이 커질수록 신뢰가 쌓인다. 오랜 시간 견고하게 쌓인 신뢰는, 위기 상황을 어렵지 않게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그랬다. 견고하게 쌓인 신뢰가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의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마음의 교집합이 가족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마음의 교집합은 모든 공동체에 필요하다. 서로의 교집합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따라, 이해의 폭이 달라지고,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 달라진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된다. 같은 실수라도, 내가 좋아하거나 아끼는 후배라면 “그럴 수도 있지, 뭐!”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눈엣가시 같던 후배가 그러면, “이거 하나 제대로 못 해!”라며 다그치게 된다. 이 차이가 바로, 이해의 폭에 따른 차이이고, 교집합의 차이다.
지금, 얼마나 교집합을 이루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