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izzard raging so fiercely that visibility is reduced to mere inches. The wind is so strong that taking a step becomes difficult. It’s truly the worst weather condition. In the pitch-black night, a faint glow emanates from somewhere. It’s a yellowish light coming from a cottage. Inside the cottage, there’s a roaring fireplace fueled by logs, with a kettle placed on top. Just like smoke billows out of a train’s engine, steam is rising from the kettle. Sitting comfortably on a rocking chair is an old man with a bushy white beard, resembling the owner of the cottage. He leans back, holding a warm mug in his hands. Lost in thought, he gazes at the logs, occasionally taking a sip from the mug with a chuckle. If you listen carefully, you can discern the soft melodies playing in the background. The scene exudes tranquility and peace. Photography, captured with a DSLR camera using a wide-angle lens (24mm), --ar 16:9 --v 5.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 중턱.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발이 휘날린다. 바람의 세기는,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야말로 최악의 기상 상태다. 깜깜한 밤, 어딘가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산장에서 나오는, 누런 불빛이다. 산장 안에는 장작으로 때는 난로가 있고 그 위에는 주전자가 놓여 있다. 이미 다 끊은 듯 주전자에서는 기차 연통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듯, 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흔들거리는 의자 위에는 하얀 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산장 주인처럼 보이는, 노인이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있다. 두 손에는 따뜻한 차가 담긴 머그잔이 들려있다. 멍하니 장작을 바라보다,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와 호호 불며 한 모금씩 들이키고 있다. 귀를 기울이면,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너무도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영화에 한 장면을 그려봤다.
물론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다. 어쩌면 조금은, 내 상상력이 양념으로 처져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상황이다. 바깥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눈보라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것을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 잠잠해질지 아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산장 안은 어떠한가? 매우 고요하다. 평화롭다는 표현을 썼을 만큼 아늑하다. 그 안에서는 내 의지대로 불을 땔 수도 있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실 수도 있다. 출출하면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고, 흔들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할 수도 있다. 어찌할 수 없는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르게,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평화도 그렇다.
평화에 대한 정의가 참 많이 있다. 최근에 들은 정의에 의하면, 평화를 단순히 고요한 상태로 명명하진 않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시끄럽지 않고 고요하기만 하면, 평화로운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평화를 그렇게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대화 없이, 각자 생활만 하면서, 한집에 사는 가정을 평화로운 상태라고 말할 순 없기 때문이다. 서로 부대끼면서 큰소리가 나고 감정이 틀어지는 상황이 벌어져도, 서로 대화로 오해를 풀고 화해하면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정을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다. 부대낀다는 건 함께한다는 방증이다. 함께 하니 당연히 부대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모든 가정이 같다. 중요한 건 이 부분을, 얼마나 이른 시간에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느냐가 가정 분위기를 결정하게 된다.
개인의 평화는 어떨까?
주변은 항상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혹은 내 의지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게 주변 상황이기 때문이다. 안 좋은 일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기도 하다. 그냥 두 손 두 발 들고 “너희들 맘대로 해봐!”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는가? 없다. 생계가 걸려있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으로 삭여야 한다. 그럼 그런 마음으로 계속 살아야 할까? 불만에 가득 찬 마음으로 불편하게 살아야 할까? 뭐, 하루 이틀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이건 아니라고 본다.
“그럼 어쩌라고?”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사실 나도 항상 평화로운 상태로 사는 건 아니니 말이다. 나뿐이겠는가?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분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작은 힌트 하나를 발견했다. 앞에서 언급한 산장의 풍경을 통해서 말이다. 바깥 상황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산장 안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전자가 주변 상황이라면, 후자는 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눈보라가 몰아치더라도 평화롭게 있는 방법은,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산장 안에 머무는 거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바깥으로 나가면 어떻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게 된다. 이때는 산장 안에 가만히 머무는 게 최선이다.
산장은 내가 만든 나만의 공간이다.
비바람이 불거나 눈보라가 쳐도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이다. 인내라는 나무를 겉에 대고 용기라는 지붕을 씌운다. 바깥 상황을 볼 수 있는, 공감이라는 창도 단다. 한 번에 튼튼하게 지으면 좋겠지만, 쉽진 않다. 때로는 나무가 부서지기도 하고 지붕 한쪽이 벗겨지기도 한다. 창문이 흔들리거나 깨질 때도 있다. 그래도 보완하면서 점차 튼튼한 산장을 만든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산장은, 웬만한 비바람이나 눈보라에는 끄떡없게 된다. 마음에 어떤 산장이 있는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갈 듯한가? 아니면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끄덕하지 않는가?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놓은 공간이다.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단단한 산장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각자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과 몸이 안 따라줘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