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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로 걸러야 할, 걱정 [김영태 칼럼]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서 이해되지 않는 게 몇 개 있는데, 이 말이 그중 하나다. 어릴 때는 아직 내가 철들지 않아서 혹은 아이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이가 셋이나 있음에도 보는 것만 봐서는 절대 배부르지 않다. 도리어 가족끼리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먹을 때 배가 고프면,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집중하기도 한다. 아직 내가 철이 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을 언제 체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주가 생겨야 들라나?
어르신들은 정말 그랬을까?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셨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당신보다 자식을 더 챙기는 마음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지오디의 노래에서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는데, 정말 싫어서 싫다고 하신 게 아니라는 말이다. 없는 형편에 자식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하신 거다. 여기서 질문 하나!
대한민국 거의 모든 어머니가 좋아하는 생선 부위는 어디일까? 바로, 머리다. 왜? 머리가 맛있어서? 머리가 맛있어서 생선 머리를 좋다고 하시면서, 쪽쪽 빠셨을까? 아니다. 자식들에게 몸통 살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시려고 하신 말씀이다. 생선에 얽힌 우스개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가난한 생활에서 형편이 좀 나아진 집이 있었다. 어머니가 아끼고 아껴서 이룬 성과였다. 어머니는 큰맘을 먹고, 크고 싱싱한 생선을 저녁 밥상에 올렸다. 아들은 생선을 보자, 바로 머리를 떼서 어머니에게 주며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머리에요.” 그걸 받은 어머니는 아들을 한 번 쳐다보고, 아들에게 생선 머리를 집어 던지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맛있는 거 너나 먹어라!” 아들은 당황한 채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억울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만큼, 눈치도 참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이렇듯, 서로가 뻘쭘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의 의미와 생선 머리를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 말이다. 실제는 그러지 않을지라도, 마음은 풍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풍족은, 만족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되겠다. 실제는 배가 고프지만 그걸 느끼지 않을 만큼 기쁘다. 실제는 먹을 것도 없지만, 먹은 것처럼 뿌듯하다는 느낌처럼 말이다.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면, 생리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감각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생기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가 아닐까?
항상 미소짓는 사람이 그렇다. 그 사람이라고 항상 좋은 일만 있어서 미소를 짓는 게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미소를 지을까? 자기 관리 혹은 포장 뭐, 이런 걸까? 아니면,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 때문일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어떤 상황, 특히 좋지 않은 상황, 에서도 근심과 걱정으로 허덕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벌어지는 상황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다. 찌꺼기를 걸러서 맑은 물을 내리는 필터처럼 마음에 필터로 걸러낼 건, 걸러낸다.
가진 것이 없는데, 나눌 수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없다는 사실에 집중해서 걱정만 하지 않는다. 걱정을 마음에 필터로 거른다. 그러면 봐야 할 것만 보인다. 걱정에 싸여 보이지 않던 사람이 보인다. 내가 사랑으로 보듬고 챙겨줘야 할 사람이 보인다. 사실 나도 아직은 걱정이라는 찌꺼기를 필터로 온전히 걸러내지 못한다. 그렇게 불쑥불쑥 삐져나오는 걱정이, 나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도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지금부터 더, 필터로 걸러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중요한 건 현실 혹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