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해준다.”
이 말에 의미는 뭘까? 이것저것 잘 챙겨주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어떤 상황이든 무난하게 넘어가 주는 게 잘해주는 걸까? 얼핏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질문해 보자. 잘못해도 그럴 수 있다며 그냥 넘어가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꾹 참고 그냥 넘어가는 것을 잘 해준다고 볼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건 잘해준다는 의미를 넘어, 거의 방관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회피하는 느낌까지 든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영화 <친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가 조직폭력배 두목인 주인공이 있다. 명대사로도 꼽히는,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라는 선생님의 질문으로 알게 된 직업 말이다. 집에는 항상 덩치가 큰 삼촌(?)들이 있었고, 그들과도 가까이 지냈다고 말한다. 두목의 아들이니, 삼촌들이 당연히 잘 해 줬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용돈도 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했을 거다. 주인공은 성인이 돼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는다. 고등학교 친구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이런 말을 한다.
반항기가 가득하던 학창 시절.
학교에 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희한했던 건, 자신이 학교에 가지 않는데 그 누구도 자신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단다. 그 많은 삼촌 중에 아무도 뭐라고 혼내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만약 그때 누구라도 자신을 두들겨 팼더라면, 아마 자신은 이 길에 들어서지 않았을 거라 말한다. 삐뚤어진 자신을 바로잡아주는 어른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 주인공한테는 암울한 과거로 기억되었다.
혼내지 않아서 좋았던 게 아니었다.
자주 혼이 났던, 아니면 혼이 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아니, 왜?”라고 반문할 수 있다. 자기 처지에서는, 혼내지 않는 사람들이 잘해주는 사람의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인공은 아니었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 그냥 두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혼내는 사람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이고, 곧 어른이라고 표현했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나 말투가 아니라, 그걸 드러내는 사람의 마음이다. 겉으로는 아무리 좋은 말과 행동을 해도 좋은 마음이 아니라면, 금방 드러난다. 좋은 말이지만, 마음에 담기지 않는다. 촉촉하고 따뜻한 느낌이 아닌,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이 든다. 겉으로는 모질게 구는 것 같아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라면, 오래지 않아 진심을 알아차리게 된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서 슬픔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렇게 된다. 진심은 그렇게, 마음 한쪽을 촉촉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상대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인가?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할지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의 상태를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음 같아서는 모른 체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건 사실이다. 밉거나 얄미운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조금 양보한다면,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조금은 생기게 된다. 그 마음이 생겼을 때 말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전해지기 때문이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라면, 진심은 언젠가는 통한다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