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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집에서 살고 있다면?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져 물을 수 있겠다. 내가 뱀띠이긴 하지만 사실 뱀은 좀, 아니 매우 징그럽다. 뱀을 실제로 처음 본 건, 정확하진 않지만 6~7살 때로 기억한다. 어쩌면 초등(그때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을 수도 있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곳에 살았다. 하긴, 지금 생각으로는 어디를 떠올려도 그때는 서울 같지 않게 보였을 거다. 개울이 있었고, 개울 좌우로는 풀이 많이 나 있었다. 그 위는 흙으로 된 평지가 있었다. 거기서 처음 뱀을 봤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그때는 비가 와도 개의치 않고 밖에서 놀았다. 오히려, 뭐가 그리 좋았는지 더 신나게 놀았다.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동네 형들이 개울 근처에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슬금슬금 그곳으로 갔다. 빈틈을 비집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봤는데, 그 순간, 헉! 깜짝 놀랐다.
빨간 망 그러니까, 양파를 담았을 법한 망이 보였고, 그 안에 뱀과 개구리치곤 엄청 큰 황소개구리가 있었다. 매우 격렬하게 싸움을 하는 듯 보였다. 작은 공간에서 뱀은 매우 유연하게 움직였고 황소개구리는 좀 묵직하게 툭툭 튀어 올랐다.
당연히 뱀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황소개구리가 이겼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 장면과 황소개구리가 승리했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충격이었다. 뱀과 황소개구리의 싸움을 본 것도 충격이었지만, 개구리가 이기다니 말도 안 돼. 책에서 약육강식의 세계를 표현한 피라미드 모양을 봤던 터라, 더 그랬다. 분명 개구리는 뱀에 먹잇감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때의 충격적인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뱀 얘기를 꺼냈더니, 어릴 때 추억이 떠올라 잠깐 소환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뱀이 집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TV에서 소름 돋는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의 뱀을 키우는데, 집안이라는 배경만 지우면, 밀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크고 많은 뱀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쓱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정말 오싹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졌고, 억만금을 줘도 저렇게 살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도마뱀이나, 기타 징그럽다는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헐~”혹은 “어휴~”라는 감탄사가 뛰어나올 만큼.
도대체 왜 저럴까 생각했다. 예쁘고 귀여운 애완동물, 아니지 요즘은 반려동물이라고 해야 하지? 이런 동물을 키우면 되지, 왜 굳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징그럽지 않은가? 그리고 안 무서운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지금도 이 의문이 드는 건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하다. 왜 그런지, 조금을 알 것 같은 느낌? 맞는 이유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좋아서 함께 있었을 수도 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면, 나름 친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가족의 인터뷰에서도 그런 말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징그러웠는데 같이 있다 보니 나름 지낼만하다고.
익숙해졌다고 할까? 눈에 익으니,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기억이 또 하나 소환된다. 6학년 때, 방학 숙제할 때였다. 그때는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실험을 했었다. 방학 숙제 중에 탐구 활동이 있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서 자유롭게 탐구하고 결과를 제출하는 숙제였다. 의무가 아닌, 선택이었다.
과학도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 주제를 정했다. 그때도 역시 서울에 살았는데, 바퀴벌레가 엄청 많았다. 쓰레기통 주변도 그렇고 구석구석 참 많이도 다녔다. 그래서 주제를 바퀴벌레로 정했다. 기억나는 몇 가지 실험이 있다. 바퀴벌레가 1분 동안 이동하는 거리를 쟀다. 바퀴벌레가 이동하는 동선을 수성 사인펜으로 그었다. 그리고 그 위를 실로 똑같이 모양을 만들었다.
그 실의 길이를 재서 이동 거리를 작성했다. 어디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지 조사하기도 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바닥에 놓는 끈끈이 같은 게 있었다. 바퀴벌레가 그곳을 지나가면 발이 붙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많이 봤던 곳에 그걸 놓고 하루 이틀 지나서, 붙어있는 바퀴벌레 숫자를 세서 기록했다.
친구들은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비유가 상했는지, 웩웩거렸다. 내가 뱀을 징그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실 나도 바퀴벌레가 매우 싫었다. 그래도 호기심에 선택했는데, 바퀴벌레가 귀엽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서 익숙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정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들면서 나도 나 자신에게 ‘미쳤나?’라는 생각을 했으니, 주변 사람은 오죽했을까.
두려움을 달리 볼 수 있던 이유가 뭘까?
지금 언급한 두려움은, 징그럽다는 생각, 무섭다는 생각, 같이 있기 싫은 생각 등을 포함해서 한 단어로 정리한 것이라 보면 좋겠다. 함께 지내면서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라고 표현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는 이유는 멀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느낌이 더 크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느낀 이유는 밀어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징그럽고 무섭고 같이 있기 싫은 느낌이지만, 함께 머물기 위해 노력하면 두려움은 친밀감으로 변해간다.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그 존재가 친숙함으로 변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