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로 만든 그림.
“학원 선생님이 비교하면서 살래요!”
둘째가 학원에서 돌아와 같이 밥을 먹는데, 한 말이다. 학원 선생님이, 모든 평가는 상대평가이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살라고 했다는 거다. 반은 이해가 됐지만, 반은 이해가 되질 않아 아이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그건 시험이 상대평가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 다른 건 비교하는 게 좋은 건 아닌데?” 아이는 손가락을 가로저으며, “아니에요. 시험만 그런 게 아니라, 어차피 모든 게 다 비교하는 것이니, 자기만 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비교하라고 했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좀 어이가 없었다. 상대평가라는 특성상,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것을 비교하면서 살라고 했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비교하는 삶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잘 알기에, 혹시 아이가 진짜 비교하면서 살까 봐, 에둘러서 이야기해 줬다. “음…. 그건 비교라는 표현보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좋은 점은 닮고 나쁜 점은 닮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사자성어로 설명하려는 데, 갑자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 맞다. 이제 생각났다.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다. 전자는 좋은 점을 닮으라는 것이고, 후자는 좋지 않은 모습을 닮지 않아야 한다는 표현이다. 비교가 아니라, 참고다. 너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외골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타인의 모습이나 상황을 보고 참고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할 수 있겠다.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취하지 않는 모습이니 말이다. 하지만 비교는, 반대다. 나쁜 것만 취한다.
비교가 나쁜 것만 취한다는 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얻은 것에 집중하지 못한다.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내 안에 내가 없는 거다. 시선을 외부로 돌리면서 두리번거린다. 타인에게 집중하고 외부 상황에 집중한다. 내가 얻지 못했지만, 타인이 얻은 것에 집중한다. 당연히 좋은 감정이 올라올 리가 없다. “왜 나만….”이라며 불평한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내가 얻지 못한 것을 타인이 얻었다면 반대로, 나는 얻었지만 타인이 얻지 못한 것도 분명히 있다. 각자가 얻은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얻지 못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비교라는 말이다. 비교가 최악인 이유다.
비교의 또 다른 최악이 있다.
얻은 것뿐만 아니라, 해야 할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다는 거다. 비교는 에너지를 떨어트린다. 얻지 못한 것에 집중하는 데 에너지가 올라갈까? 아니다. 오히려 현재 상태보다 떨어진다. 에너지가 떨어진 상태에서는,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고 싶다는 마음 혹은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거다. 아니, 못하는 거다. 해야 할 것이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다고 하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교육을 들어야 하고 필요하면 실습도 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능숙하게 된다. 자격증 취득은 물론 실제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이미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비교하며 좌절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싶은 의욕이 떨어진다. 해야 할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고 실습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게 된다. 자격증은 물론 자격도 갖추지 못한 채, 계속 나아가는 사람만 부러워한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거다. 그럼 또, 비교의 늪에 빠진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비교를 차단해야 한다. 비교하려는 마음이 올라오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거다. 그것만 바라보고 집중하면, 점차 에너지가 올라오면서 더 집중하게 된다. 해야 할 이유가 명확해지고, 더 나아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찾게 된다. 해야 할 것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해야 할 것을 하게 되면, 해내게 된다. 원하는 것을 얻는 거다.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고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진정 원하는 곳에 도달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거다.
행동하지 않으면 결과는 나지 않는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비교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사람이 어떻고 저 사람이 어떻고는 잊어야 한다. 내가 명확하면 되는 거다. 명확한 그림을 그리고 거기로 가는 길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면 된다. 그리고 가는 거다. 그냥 가는 거다. 누가 뭐래도 가는 거다. 그러면 원하는 곳에 도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다. 그 시기를 모를 뿐, 분명 그곳에 도달한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