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칼랑, 12월 30일: 2022년 12월 30일 싱가포르 칼랑의 잘란 베사르 스타디움에서 열린 AFF 미쓰비시 일렉트릭 컵 B조 경기에서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이 후반전 싱가포르와의 경기 도중 응우옌 반 끼엣(등번호 10번)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사진: Yong Teck Lim/Getty Images)
축구는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1896년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 당시 축구가 소개돼 중부와 북부지역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축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들은 재베트남 프랑스인들었다.
일찍 수입되었기에 베트남인들 사이에 축구의 인기는 대단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당시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월드컵이라며 베트남은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베트남이 강한 팀과의 대결에서 패하더라도 한 골만 넣으면 길거리로 나와 자축을 하기도 한다. 월드컵, 유로컵, 동남아시아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모든 언론이 해당 대회를 커버 스토리로 다룬다.
베트남 국내 축구의 인기는 비교적 높지 않은 편이다. 유럽 빅리그 축구 경기는 누가 몇점차로 이겼는지 아는 팬이 많지만 국내 리그 경기 결과를 아는 팬은 많지 않다. 국내 리그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그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바로 박항서 감독 덕분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베트남인들의 가슴에 축구에 대한 불을 당기게 한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은 2018년 1월27일 중국 창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2018 아시아 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결승에 올라 우즈베키스탄에 아깝게 패하며 베트남 전체를 들끓게 했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이런 성적을 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대성공을 거두자 팬들이 길거리로 나와 축제를 열었던 것처럼 베트남 국민들도 길거리 응원과 축제를 열며 초유의 성공을 자축했다. 박항서는 히딩크가 한국의 영웅이 된 것처럼 베트남의 영웅이 됐다.
베트남 축구가 ‘박항서 매직’을 경험한 것은 그럴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그 인프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베트남은 2008년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한 대변화를 시작했다. 베트남의 거대 부동산 기업인 빈그룹이 출자한 축구 육성 프로젝트 베트남 유소년축구기금(PVF)을 통해 유소년 클럽 축구에 집중 투자했다. 이 프로젝트는 치밀하고 체계적이었다. 8세부터 한 살 간격으로 각 연령 클럽팀을 만들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1세부터 14세까지는 프로 선수를 목표로 하지 않고 훈련을 한다. 14세까지는 말 그대로 ‘선수 육성’이 아닌 ‘지원’의 의미가 강하다. 14세가 넘으면 테스트를 거쳐 프로 선수를 준비하는 훈련이 진행된다. PVF는 19세까지의 어린 선수를 키운 뒤 이들이 프로팀으로 진출하는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42107025&code=#csidxe0418f45f599e6fa97e8ce0cd9e2cd0]
유소년 때 치밀하고 체계적인 프로젝트 안에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선수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한 명의 위대한 감독과 스타가 한 나라의 축구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역시 모든 축구 발전의 근본은 유소년 축구의 개선에서 시작한다. 베트남의 대성공에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유소년 축구의 발전을 더욱 강조한 바 있다.
"이번 대회(U-23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세운 대표팀의 업적은 베트남 축구의 역사적인 승리이자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 베트남축구협회(VFF) 및 기타 부처, 부문, 지역할 것 없이 이번 대회 경험을 본받아 학교 축구, 유소년 축구를 위한 훈련 및 최고 수준의 프로축구 발전, 시설 업그레이드, 전문 사회 강화, 해외 전지훈련, 특히 깨끗한 축구 배경 만들기를 위해 나설 것이다. VFF가 다른 기관, 부처, 지부 및 지역, 특히 체육 및 체육 관련 부서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베트남에서 전문적이고 강력한 축구를 발전시켜줄 것을 당부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9/2018012900750.html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었다가 떠오르는 국가는 대부분 유소년 축구에 집중했다. 베트남도 그랬다. 한국 언론 대부분이 베트남의 성공을 ‘박항서 매직’으로 공을 돌렸다면 그 이면에는 유소년 축구가 있음을 한국 축구인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항서 매직을 경험한 베트남 축구의 성공을 단순히 ‘투혼 축구’로 평가하기에는 그 기초가 단단했던 것이다.
박항서 감독의 재임 기간은 2017년 9월 29일부터 2023년 1월 31일까지였다. 박항서 감독은 2018년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과 2019년 필리핀 동남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통해 베트남 축구협회의 기대를 넘어섰다. 또한 사상 첫 AFC 주관 대회 준우승, 56년 만의 아시안 게임 4위, 아시안컵 3라운드 8강 진출, 사상 첫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을 이뤄내며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아시안 게임 4위와 아시안컵 8강은 일본, 이란, 호주 등 강팀들도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성과로, 박항서 감독의 용병술이 빛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