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프랑스 - 2024년 7월 30일: 보르도의 누보 스타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축구 C조 경기에서 이집트 팀의 아델 이브라힘(10번)이 팀의 첫 골을 넣은 후 동료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사진 제공: Juan Manuel Serrano Arce/Getty Images)
지난 1934년 아프리카팀 최초로 이탈리아월드컵에 출전했던 이집트는 1990년 같은 나라(이탈리아)에서 열린 월드컵에 56년만에 진출했다. 그리고 28년만에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받았다. 이집트는 또한 2024 파리 올림픽 축구에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무려 7회 우승을 차지한 이집트는 월드컵과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부진을 보여 러시아 월드컵을 포함해 총 3회 진출에 그쳤던 것이다.
이집트는 2010년에는 FIFA 랭킹 9위까지 진입하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래서 이집트 축구 팬들의 기대는 매우 높다. 이집트 국가대표가 경기를 할 때 카이로의 거리는 한산해진다. 축구를 보러 경기장에 가지 않으면 TV 수상기 앞에 삼삼오오 모여들기 때문이다. 국대팀이 중요한 국제대회에서 승리를 거두면 길거리는 축제의 장이 된다. 국기를 흔들고 경적을 울리며 운전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축구는 20세기 초반 영국인들에 의해 소개됐다. 1907년에 이집트 내에 축구 클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921년에 이집트 축구 협회가 창설됐다. 이집트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터키, 포르투갈,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4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집트는 또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4강 진출을 이뤘다.
1950년대에 아프리카 축구 협회가 카이로에서 세워지며 아프리카 대륙에 축구가 부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라가 이집트다.
역사가 깊고 아프리카 전역에 영향을 미친 이집트의 축구와 2011년의 ‘이집트 혁명’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을 해볼 수 있는데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축구는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특히 그렇다. 이집트도 마찬가지인데 이집트 혁명 당시 ‘울트라스(Ultras)’로 불리는 축구 팬모임은 젊은 동료들이 무바라크 정권에 의해 무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시위에 앞장선 바 있다.
이들은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을 갖춘 그룹이었다. 축구 응원을 통해 이미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등의 단체행동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는 축구 응원에만 집중했던 울트라스는 이집트 혁명 당시 변혁을 외치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과격했다고 주장한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인들에게 과격단체의 회원들이었을 것이다. 변혁을 위해서는 때론 강력한 반격이 필요하다.
축구를 누가 단순한 공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집트 혁명은 축구팬들에 의해 더 강력해졌다는 것은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