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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이유가 뭘까?
무언가를 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시작했는데, 포기하는 이유가 뭘까? 개인적인 사정부터 피치 못할 여건까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것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포기를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래서 한때는, 너무 나약한 내 의지를 탓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주변의 상황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이런 것들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겁한 변명이 아니고.
무엇 때문일까? 간절함이 없던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다. 뭐, 이런 것도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봤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그 가장 밑바닥에 새겨진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끝을 알 수 없으니….”
그렇다. 끝을 알 수 없으니, 포기하게 된다. 끝을 안다면 포기하는 확률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거다. 그만큼 끝을 알 수 없다는 건, 막연함을 넘어 공허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했는데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내 주장을 증명하는, 짧지만 강력한 그림이 하나 떠오른다. 4컷 정도 되는, 만화다. 땅속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열심히 팠는데, 파도 파도 안 나오니 곡괭이를 내려놓고 포기했다. 다음 그림을 보고 바로, “아이고!”라는 탄성이 가볍게 튀어나왔다. 두어 번만 더 파면되는 위치에 금덩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그 사람은 포기했다. 만약 알았다면 과연 포기했을까? 아닐 거다. 절대 아닐 거다. 처음 시작부터 몇 미터 뒤에 금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끝을 알기 때문이다. 끝을 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은 끝을 알지 못한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교육 과정이나 적금 같은 거면 모를까, 거의 가 끝을 알지 못한다. 힘든 교육 과정을 견디는 힘 그리고 형편이 녹록지 않지만, 적금 만기까지 견디는 힘은 끝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고 하자. 그 노력을 얼마나 해야, 언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있을까? 매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한다.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해야 건강하게 근력이 붙고, 그로 인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래서 가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허튼짓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정말 허튼짓일까? 언제 어떤 결과를 낼지도 모르는데, 그냥 하는 모든 것들 말이다. 내 경험으로 돌아봤을 땐, 아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조금씩 내 안에 쌓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쌓였던 힘이 발휘된다. 언제 읽었는지 모르는 책에 한 문장이, 글을 쓸 때 뛰어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자주 한다. 계단을 내려오다 헛디뎠는데, 빠르게 중심을 잡아 넘어지지 않은 것도 그렇다. 그동안 해온 유연성과 근력운동 덕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 미리 준비한 건 아닌데 해야 할 말이 떠오르고 좋은 사례까지 떠오른다. 지금까지 읽고 보고 공부한 것이 잘 버무려져서, 내 입을 통해 나오는 거다.
우리가 걱정하는 대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대부분은, 결과다. 어찌할 수 없는 결과만 바라보면, 내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내가 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내 안에 쌓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사실을 믿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해볼 만하지 않은가?